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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25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2. 2018.04.20 퇴원
  3. 2017.01.29 이현이의 18개월
  4. 2016.11.21 사랑의 본질
  5. 2016.09.22 엔딩크래딧.
  6. 2016.08.02 아이를 왜 키우냐고 묻는다면,
  7. 2016.08.02 말귀
  8. 2016.07.06 행복이 무어냐 묻는다면,
  9. 2016.05.04 복직단상
  10. 2016.02.04 낯가림 시작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카테고리 없음 2018. 5. 25. 19:00


저는 방송에서 아메리칸 뉴저널리즘의 문체를 도입하여 트루먼 커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나 사와키 고타로의 테러의 결산의 형식을 따라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도모코씨는 남편의 죽음 속에 있던 사적(개인적)인 부분과 공적인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며 남편 죽음의 공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어요’라고 매우 성숙하게 대응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디어는 죽음의 사적인 부분, 즉 자살에 대한 충격이나 유족의 슬픔을 취재하려 합니다. 제가 다큐멘터리에서 묘사하는 대상의 대부분은 공적인 부분입니다. 그래서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비판하더라도 그 비판이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시종일관하지는 않습니다. 

우연히 내가 카메라를 드는 쪽이 되었고 당신이 찍히는 쪽이 되었지만 그로써 만들어지는 작품 혹은 프로그램에서 서로의 노력으로 뜻깊은 공적 장소와 공적시간을 창출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방송이다. 


고마쓰 씨는 이밖에도 <아이가 교과서를 만드는 학교>라는 책을 남겼는데 이 책은 교과서를 쓰지 않는 ‘종합학습’에 열중했던 나가노현이나 초등학교 모습을 취재한 겁니다. 
이 책을 읽고 떠오른 것은 대학교때 보고 감동받은 <송아지를 기르는 초등학생들>이었습니다. 이는 이나 초등학교 1학년 봄반의 아이들과 홀스타인 젖소 하루미의 학교생활을 9개월에 걸쳐 취재한 방송프로그램입니다. 

봄반은 이미 3학년이 되어있었고 다시 한번 자신들의 손으로 소를 길러보고 싶다고 의논을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이번에는 다 자랄때까지 길러서 젖을 짜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창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출을 받아 당시 가정용으로는 성능이 좋았던 비디오카메라를 샀고 업무 중 틈틈이 이나 초등학교에 가서 그들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히말라야 안쪽 금단의 왕국에 대하여- 연출가 입장에서는 뭐가 나쁘다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겁니다. 알려지지 않은 땅에 겨우 도착하는 고난을 재현했을 뿐이다. 힘든건 사실인데 왜 안된다는거지? 확실히 일본의 다큐멘터리 역사에서는 이에 가까운 행위가 허용된 시대가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찍을 수 없으니까 부탁해서 재현해달라고 합니다. 도촬이 아니고서야 카메라로 찍고 있다는 것은 상대도 압니다. 그런 상황에서 재현하는 이상 그것은 이미 ‘조작’이라는 냉소적인 인식에 이르는 연출가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찍고 전달한다고 믿는 연출가보다야 낫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히말라야의 연출이 좋은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게 현재의 제 입장입니다. 


저는 ‘조작’이란 자신의 이미지를 현실보다 우선시하는 닫힌 태도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로는 성실한 사회고발형 다큐멘터리라 할지라도 찍기 전부터 잠재적 이상이 연출가 안에 확고하게 존재하여 정신이 거기에 갇혀버리면 지향하는 뜻이 어떻든 간에 ‘조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앞에서 ‘열린 자신’으로 어떻게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다큐멘터리 연출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재현’이 아닌 ‘생성’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자세 앞에서만 태어납니다. 이 ‘생성’에 자신과 취재 대상을 열어나가기 위한 연출과 재현에 스스로를 닫으려 하는 ‘조작’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문을 중심으로 하는 수많은 활자 미디어는 그 목적을 구분하지 않고 수단으로서의 ‘조작’을 모두 단죄하려 했습니다. 이는 역시 활자측도 영상에 대한 이해력이 낮기 때문이겠지요. 

옴진리교에 대하여_ 신자들은 생활의 자잘한 풍요를 누리지 않습니다.먹는 것은 간소하고 입는 것에도 흥미가 없습니다. 음악이나 미술, 영화, 책, 교양 등에도 전혀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세계는 그런것들의 축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그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질’을 잃게 된 것 아닐까요. 

텔레비전은 범죄 사건을 다룰때 ‘슬픔의 대상으로서 정서적으로 등장하는 피해자’대 ‘공격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가해자’라는 단순한 도식에 끼워 맞추려 합니다. 저는 이 도식에 들어가지 않는, 사건의 직접적인 관계자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하면 사건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고찰해보고 싶어서 가해자 측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함께 보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될까. 그것을 <디스턴스>에서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어느날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라는 인식을 희박하게 지닌 채 재판에 임하면 ‘내가 피해자라면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라는 피해자 입장의 발상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생각 한편에 ‘우리는 이 가해자를 낳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라는 의식이 균형있게 존재하면, 배심원 제도는 우리와 사회의 관계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디스턴스에서 구태여 배우에게 애드리브를 요구했습니다. 그들이 역할에 완전히 빠져서 분출하는 단 한번의 대사나 움직임, 표정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던 겁니다. 이 영화에서 몇 장면은 제가 우너하는 대로 실현되었습니다. 나쓰가와 씨에게 배역을 의뢰했을때 그녀는 너무 부담이 되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촬영이 시작되어도 마찬가지여서 부담감에 위궤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전환점은 분명히 찾아옵니다. 나쓰가와씨와 향주머니를 들고 데이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거기서 나쓰가와씨는 불쑥 ‘남편이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갈때 신발을 잊어버리고 갔어’라고 처음으로 스스로 남편 역인 겐이치씨와의 장면을 떠올리며 말했던 것입니다. 매우 자연스럽게 역할에 빠져들어 기억을 떠올리듯 이야기했습니다. 

미국 영화감독 존 카사베테스가 ‘어떤 애드리브를 할 경우 둘이라면 두 배우의 정보량에 차이를 둔다’는 방법을 책에 쓴 적이 있어서 실천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때 료씨의 ‘엇....’하고 놀라는 표정, 당혹감,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사노의 연기도 매우 스릴있었습니다. 이와같은 정보 격차 작전은 네번째 작품 <아무도 모른다>에서도 응용할 수 있었습니다. 

<헌법에 대하여>
모리씨는 제 1조 천황, 나가시마씨는 제 96조 헌법개정, 후지 티비는 21조 표현의 자유, 다큐멘터리 재팬은 제 24조 남녀평등, 슬로핸드는 제 25조 생존권을 골랐고 마지막으로 제가 9조 ‘전쟁포기’를 선택했습니다. 저에게는 명백한 괴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저 자신의 괴리를 모티브로 삼아 오키나와, 히로시마, 타이완, 한국, 아우슈비츠, 미국 등에서 촬영했습니다. 헌법 그 자체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기보다 헌법을 제재로 삼아 자신의 역사 속에서 의식되고 또 망각되어온 ‘권력’ ‘폭력’ ‘가해성’등을 재검토해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만약 일본사회가 참된 의미로 성숙하다면, 그때는 일본인이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 헌법을 고쳐쓰고 제 9조는 국민투표로 다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을 말하자면 의사와 긍지와 각오를 가지고 제 9조를 다시 한번 선택하는 겁니다. 


야마후치 쇼지씨가 고콘데이 신초와 단시의 리쿠고를 비교하며 이런 글을 썼습니다. 
‘현대에서 과거로 관객을 이동시키는 것이 신초이고, 과거를 단숨에 현대의 물가로 끌어당기는 것이 단시다’ 

그리고 신초를 ‘픽션파’ 단시를 ‘논픽션파’로 정의합니다. 매우 예리한 데다 알기도 쉬운 분석입니다. 
저는 작품을 본 사람의 내부에 픽션은 도취를, 다큐멘터리는 각성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감정 이입을 유발하여 보는 사람을 주인공에게 동화시킴으로서 현실과 멀어져 두시간 동안 꿈의 체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픽션과 타자로서의 등장인물을 작품 안에 우뚝 세움으로서 오히려 보는 우리쪽을 비평하는 역할을 하는 다큐멘터리. 

<아무도 모른다>
불량 식품 가게는 좀 특이해서 과자를 사러 온 아이들에게 도화지와 크레용을 주며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그림 몇장이 가게에 걸려 있었는데 장남이 그린 그림에는 ‘릿쿄 초등학교’라는 사립 초등학교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하렴’이라고 했을 어머니의 지시를 고지식하게 따랐던 거겠지요. 저는 그 불량 식품 가게에 걸린 그림 이야기를 듣고 영화는 장남의 거짓말 그림일기로 진행되는 형태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가 사는 현실은 혹독하지만 불량 식품 가게에서 그리는 그림일기에는 ‘가족과 다함께 00에 갔습니다’라며 즐거운 일만 쓰여 있습니다. 
마지막에 여동생을 매장한 지치부의 산 그림에 ‘매우 멋진 일요일이었습니다’라는 소년의 내레이션이 겹치며 끝나는 구조였습니다. 

영화는 사람을 판가름하기 위해 있는게 아니며 감독은 신도 재판관도 아닙니다. 악인을 등장시키면 이야기를 알기 쉬워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관객들은 이 영화를 자신의 문제로서 일상으로까지 끌여들여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유명한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그리고 영화는 계속된다>라는 책에 나와있는 대로라면 실제로 아역을 괴로운 상황에 몰아놓고 촬영했던 모양입니다. 우선 숙제 공책을 스태프고 숨겨 주인공을 불안하게 만드는 동시에 공책을 깜빡한 반 친구가 선생님한테 호되게 혼이 나서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더욱 불안해하는 주인공을 찍어 그 표정을 전혀 다른 문맥에서 씁니다. 
켄 로치의 <케스>라는 영화는 가족과도 선생님과도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낙오자 소년이 매 한마리를 기르며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속에서 마음이 피폐한 소년의 형은 동생을 시샘해서 그가 기르던 매를 죽여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소년은 집으로 돌아와 매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찾아다니다가 마지막에 쓰레기통 속에서 죽은 매를 발견하는데 그 때의 표정은 도무지 연기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직접 감독에게 물어보니 감독은 ‘매가 없어지면 찾아다오’라고 소년에게 말한뒤 실제로 찾게 했다고 합니다. 물론 소년이 진짜 소중히 여기던 매는 죽이지 않고 그와 닮은 매의 사체를 쓰레기통에 넣어둔뒤 소년이 그것을 발견하고 끌어안는 장면을 찍었습니다. 실제로 <케스>의촬영이 끝난 뒤 소년은 켄로치 감독의 조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감독과 배우 사이에 신뢰 관계를 구축한 뒤 어디까지 그런 도전을 할 것인가. 



<걸어도 걸어도>
오즈 야스히로 감독은 정면에서 찍지만 나루세 감독은 어느 장면을 봐도 반드시 카메라를 대상에서 비스듭하게 둡니다. 정자체와 흘림체라고 할것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만큼 일본 가옥을 보여주는 방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루세 감독이 카메라를 비스듬히 두고 찍는 이유는 그 편이 방이나 가구 등의 위치 관계가 눈에 잘 들어와서 인간을 쉽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제 영화는 전반적으로 ‘상실을 그린다’는 말을 하지만 저 자신은 ‘남겨진 사람들’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종종 죽음과 기억의 작가라고 불리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나중에 남겨진 사람, 즉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나 자살한 남편의 아내, 가해자 유족 등 누군가가 없어진 뒤에 남겨진 사람을 그린다. 는 말을 들은게 계기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과연 그럴지도 몰라’하며 스스로도 납득했습니다. 


<코코>
코코는 투어를 하며 몇번이나 관객을 향해 ‘살아!’라고 외쳤습니다. 2008년 1월 9일과 10일은 부도칸에서 마지막 라이브 공연을 했는데 거기서도 같은 말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촬영이 끝난 뒤 그녀가 보낸 메시지에는 그때의 자신에게 ‘거짓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내내 섭식장애를 앓았습니다. 코코는 자신의 몸이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는데도 바깥을 향해 ‘살아’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데 괴리감을 느꼈던 모양으로 이제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살아’는 외부를 향한 메시지이고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육체를 향해 외치는 말이기도 했다는 점을 깨닫고 매우 납득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는 첫머리에 ‘먹는 것이라고는 흑설탕밖에 본적이 없다.’ 마지막에는 ‘입원했다’라는 자막을 넣었습니다. 

오시마 나기사는 서른 두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한 작가가 한 시대에 의미있는 픽션을 만들 수 있는 건 고작 10년이다’ ‘나는 그 10년이 이미 지났다’고 말했고 그래서 앞으로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 ‘전성기’가 언제인지를 판별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피를 수혈받고 어떤 식으로 신진대사에 신경쓸지를 의식하지 않으면 작가나 영화감독은 곧바로 자기모방에 빠져서 별 볼일 없어집니다. 이 점은 저 자신에 대한 경계로서 언제나 유념하고 있습니다. 애드워드 양처럼 <공포분자> 같은 걸작은 만든 뒤 길고 불운한 시대를 거쳐 <하나 그리고 둘 >같은 성숙한 걸작을 남긴 감독도 있습니다. 

<티비 교양학교>
가장 큰 수확은 뭐니뭐니 해도 무라키 요시히코가 만든 <당신은> <매스컴 큐 제 1회 나는...><동(아카사카편><나의 트위기><쿨 도쿄><하노이 덴 히에도의 증언><나의 화산>등의 텔레비전 방송을 본 것이빈다. 사사키 쇼이치로에 이어 ‘텔레비전에서 이런걸 할 수 있구나!’라는 충격이었습니다. 


<바다는 되살아난다>라는 텔레비전 드라마. 
러일전쟁의 영웅담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야마모토 곤노효에가 사나가와의 유곽을 방문하여 거기서 일하기 시작한 여성을 유곽에서 탈출시켜 아내로 삼는 이야기. 또 한 사람, 해군 유학생으로 러시아에 부임하여 거기서 자작영애와 사랑에 빠지는 히로세 다케오라는 실존 인물도 그렸습니다. 다시 말해 곤노씨는 드라마를 두 여성의 이야기로 바꾼 것입니다. 게다가 곤노씨는 이 3시간짜리 드라마를 나중에 45분으로 편집하는데 거기서는 두 여성의 이야기가 주축이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3시간 버전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앞으로 연출가가 되려는 인간이 고작 사내 사람과 옥신각신하거나 출근을 거부하는 건 너무 유약하다. 연출가는 외부 스태프나 배우와 터프한 협상을 해야만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는 연출가가 될 수 없다. 

<나쁜 것은 모두 하기모토 긴이치다>
저는 텔레비전의 버라이어티가 빈축을 계속 사는 원인을 만든 범인은 하기모토 긴이치다 라고 구태여 가정하고 하기모토씨를 공개재판에 회부하는 다큐멘터리를 생각했습니다. 이제까지의 버라이어티 역사를 영상으로 되짚으며 의견서에서 다룬 ‘따돌림’ ‘저숙함’ ‘아마추어 놀리기’ 등 버라이어티가 미움을 사는 일곱가지 원인을 검증하고 변호인 측으로 ‘기존의 것을 부수는게 텔레비전의 웃음’이라고 정의하는 ‘닛폰 티비 ‘전파소년’시리즈의 전 티부장의 미야케게이스케씨를 불러 증언을 받는 구성입니다.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라는 서로 다른 장르를 융합시킨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주인공은 후지무라 요시카즈 중령, 전쟁중 독일과 스위스의 일본대사관에 부임했고 패전 몇개월 전에 미국 정보국 OSS의 책임자 앨런 덜레스와 접촉하여 평화공작을 시도했다는 실존인물입니다. 나카다이 다쓰야가 이 중령을 연기하는데, 드라마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갑자기 리포터 차림으로 등장한 이타미 주조가 지금 여기서는 후지무라와 덜레스가 교섭을 시작했습니다”라며 중계를 시작합니다. 이처럼 이타미씨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충돌시켜 해체하는 역할을 ‘이타미 주조’ 본인에게 맡겼습니다. 본인의 텔레비전론 및 텔레비전관이 매우 잘 투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시봉

퇴원

퇴원 카테고리 없음 2018. 4. 20. 14:55

퇴원했다. 남동생이 데리러 와서 별다른 무리 없이 짐을 싸갖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는 응봉동에 들러 자그마한 워킹카트도 중고로 하나 샀다. 날씨가 좋았다. 미세먼지가 많다지만 병원의 공기보다 훨씬 더 맑고 상쾌한 기분이었다.에어컨이 고장난 20년된 소나타의 창문을 활짝 열고 달려서 왔다.  병원의 공기는 아무래도 무겁다. 어딘지 모르게 모든걸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병원 밥은 어찌나 맛이 없는지. 같은 음식이라도 병원에서 먹는것만으로도 맛이 없어지게 하는 힘이 있는듯하다. 

퇴원하고 나니 엄마 밥이 참 맛있다. 엄마가 깎아주는 사과도 참 맛있다. 병원 밖에서 맛보는 세상의 맛은 훨씬 풍부한 질감과 맛으로 가득차있다. 


병원에 있으면서 들었던 여러가지 생각들 중에 몇가지만 옮겨 적어보려한다.


-먼저 건강의 소중함. 그동안 건강을 얼마나 안 돌봤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몸에 남아있지 않은 근육. 그나마 젊은 나이 덕분에 이 정도인거지 내가 40대나 50대였다면 분명 버텨내지 못했을것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에 내가 왜 걸렸을까에 대한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지난 10년간 어떤 방식으로 일해왔는지도 말이다. 밤샘은 기본이고, 그 상태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받았던 스트레스. 작년에 파일럿 프로그램 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 데이터 날라간 것부터 시작해서 편성 스트레스, 제작비, 속 썪이는 작가들, 좀처럼 올라갈 기미 없이 점점 떨어지던 시청률, 클레임 거는 출연자와 상대하기 힘든 매니저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내 무릎 속에 다 들어와있겠지. 금요일 모닝와이드 팀장하면서 한주 한주 혹시라도 사고가 날지 몰라 목요일 밤마다 노심초사하면서 후배들 방에 쳐들어갔던 것도 조금은 들어있을거다. 또 다른 스트레스는 뭐였을까. 아마도 가장 큰 건 육아였겠지. 밤늦게 2,3시에 들어와도 8시 즈음해서 언제나처럼 일어나는 아들을 데리고 어린이집에 가야하는 스트레스. 많이 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서 오는 스트레스. 집에 돌아와서도 미처 일을 끝내고 들어오지 못해서 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물론 이는 어느 단계에 와서는 많이 접어버렸지만.) 아이가 아플때 멀리서 일해 돌봐주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런 스트레스들이 요 3년간 나를 따라다녔던 것 같다. 


어떻게든 일은 해야되겠는데 아이 키우기는 벅차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말 콩알만치도 없던 삶. 그게 결국은 무릎 안에서 곪고 곪았던게 아닐까.  그리고 결국에는 주먹만한 시멘트 덩어리를 넣어야 했던것 아닐까. 그 주먹만한 시멘트 덩어리가 어쩌면 내 삶에서 빠져나간 뭐 낭만이라면 낭만일 수도 있고, 여유라면 여유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콘크리트처럼 밋밋하고 빡빡해진 삶 같아서. 


여하튼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중요한건 이렇게 아픈 순간에도 일 자체를 그만둔다거나 일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든다. 쉬고 있는 동안에는 오히려 머리가 잘 굴러가고 이것저것 해보면 재밌겠다 싶은 것들이 떠오른다. 오히려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훨씬 과감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극한의 노동환경 속에서 일과 육아와 건강을 지키기란 정말 얼마나 어려운가. 현재를 살아가는 전문직 여성한테 아프지 않고 건강도 지키면서 나머지를 잘 해내라는건 얼마나 버거운 요구인가를 많이 느끼는 며칠이었다. 


- 또다시 여하튼. 그렇다면 어떻게 건강을 지켜야 할것인가. 운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 지난 3년간 쉬었던 운동을 그냥 . 무조건. 아무 조건 없이 다시 해야 한다. 수영을 해야될수도 있고 헬스 일수도 있고 자전거 일수도 있고 무조건 다시 해야한다. 생존방법이다. 그걸 위해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필요하다면 아이 보는 시간도 줄여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 수 없다. 


-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한다. 그냥 작년 무렵부터 생각해왔던 거지만 '대박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라는 기대를 애초에 접는게 제일 좋은 것 같다. 그냥 그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묵묵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평균 이상의 성과, 평균 이상의 관심, 이런 것들이 사람을 옥죄게 만드는 첫번째 조건인 것 같다. 운이 좋으면 좋은 아이템 좋은 기회를 만나는거고 아니면 그냥 아닌거다.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만큼 아이디어를 내고 무리하지 않는 선안에서 열심히 일하고 그 다음부터는 좀 잊어버리면 되는거다. 그 훈련을 이번 계기로 한번 해보는거다. 


- 세번째는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거다. 왜 일을 못하는지 왜 성격이 모난지 책망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미움받을 수 있는 용기도 중요하지만 미워하지 않는 자비로움도 필요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작년에 내가 정말정말 너무너무 미워했던 *씨. 그분이 이 병과 연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분이 나에게 보냈던 증오에 가득한 카톡메시지들. 그분이 내게 퍼부었던 말들. 그말들이 가슴에 맺혀서 정말 한없이 답답해졌던 그때 생각해보면 그냥 무시해버리고 잘라버렸으면 되는거였다. 괜한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도 감정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잘된듯도 싶다. 기왕 이렇게 된거 당신 얼굴 안 봐도 되니까 좋소. 다시 마주쳐도 인사도 안하고 그냥 원래 살던 대로 살아보겠소. 어차피 이렇게 될 요량이었으면 당신이 나를 비난함으로 인해서 당신이 얻을 소득은 없소.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거였다. 그러니까..내가 바보같은거였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될것을...말이다...

Posted by 시봉

이현이의 18개월

이현이의 18개월 카테고리 없음 2017. 1. 29. 07:26

이현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법 두개의 단어를 붙여서 얘기할 줄도 안다. 엄마 물물. 엄마 맘마. 할아버지꺼. 할머니차. 각자 붙어있는 단어의 뜻도 이해하고 무엇을 지칭하고 요구하는 건지도 안다. 물건에 이름이 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 신기하다. 그렇게 무에서 유가 되어가려는 노력 아닌 노력들이 감격스럽다. 모든 엄마는 자기 자식이 똑똑하다고 착각한다는데, 나 역시도 비슷한 병에 걸렸다. 우리 아들이 참 똑똑한 것 같다. 팔불출. 


요즘의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게 있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잊고 있었던 내 안의 '아이'라는 본질을 일깨우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 이현이는 숨바꼭질에 푹 빠져있는데, 예전에는 커텐이나 문 뒤에 숨어있더니 깜깜한 장소를 제법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혼자 숨으면 숨었지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숨자고 한다. 그래서 결국은 커다란 이불장 속의 이불을 죄다 비우고 이현이와 그 속에 들어가있었다. 그 속에 들어가있으면서 정말 정말 오랜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어느 순간이 다시 되돌아왔다. 5,6살 무렵 나 역시 옷장 속에 들어가 이현이처럼 몸을 구기고 누워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면 엄마 뱃솟처럼 묘하게 편안하고, 동시에 긴장되고, 정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숨쉬는 소리와 바깥에서 엄마가 설거지 그릇을 덜그덕대는 소리만이 들릴 때. 그리고 눈을 뜨고 있으면 어느 순간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발가락이 보이고, 손가락이 허옇게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그 느낌.  그 느낌이 좋아서 한참동안 그러고 앉아있었다. 어쩌면 이현이가 아니었으면 다시 맛보지 못할 삶의 맛.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현직 어린이'를 키우면서 '전직어린이'였던 나를 다시금 돌아보는 과정이다. 그리고 내 안의 '아이'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내가 언제 행복하고 해방감을 느꼈는지를 다시 상기시키는 일들이다. 종종 그런 감정들을 느낀다. 이현이와 그네를 탈 때, 흙바닥에 드뤄누워서 하늘을 볼 때. 개미나 고양이를 찾아 헤맬 때. 숲에 갔을 때. 

엄마가 등 뒤에 손을 넣어 슥슥 쓸어줄 때, 맘껏 신나게 뛰어놀았을 때 행복했던 내 자신을 다시 자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인생에서 이런 순간들을 이토록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시 환기시켜볼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아이를 통해서 그 짜릿한 느낌들을 다시 맛볼 수 있다는 것이.

Posted by 시봉

사랑의 본질

사랑의 본질 카테고리 없음 2016. 11. 21. 04:21

사랑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는 날들이다. 아이에게 자기 전에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라고 이야기한다. 볼에 뽀뽀를 하고, 밤잠을 몰아내며 겨우겨우 매일매일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잠이 오는 밤에 기저귀가 젖거나 무서워서 깬 아이를 토닥여 재운다. 그게 사랑일까.
사랑의 본질을 생각해본다. 연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그런 존재가 환하게 웃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것. 그게 사랑일까.
오늘 가족들끼리 삼청공원에 다녀왔다. 당산동에서 느껴졌던 가을이 열배는 물씬 느껴졌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다 발치 아래를 내려다보면 우리 아들이 아장아장 걷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못 볼 순간들이라 설명못할 감정이 차올랐다. 한 생명이 낙엽을 밟고 햇살을 느끼며 기분좋게 달려간다는게 뭔지 깨달아가는 생의 감각, 그 현장에 내가 함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이 모든 걸 함께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이현이라는 존재를 내게 데려다준 것에 대한 감사. 신이라는 존재의 이름을 갖다붙이고 싶진 않지만 그 비슷한 전지전능한 존재에게 얘기하고 싶은 날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충만하다고.

이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부모됨의 의미가 뭔지 깨달아나간다. 희생이 처음에는 고달프고 힘들지만 남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도 익숙해지면 몸에 익고 버겁지 않다. 둘째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나같이 이기적인 애가 나만 생각하지 않고 이현이를 낳은 것처럼, 좀더 주변을 돌아보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좀더 이웃들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시봉

엔딩크래딧.

엔딩크래딧. 카테고리 없음 2016. 9. 22. 13:54

방송이 일주일 전에 나갔다. 나가는 순간까지도 탈이 많았다. 기업명을 노출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CP와 다른 피디들간에 갑론을박, 현대자동차의 회사명을 넣느냐마느냐를 가지고도 시끌시끌, 모자이크를 어디까지 세게 칠거냐를 가지고도 논쟁.  방송 30분 전에는 예고편을 보고 오해한 출연자한테 항의전화가 오고. 혹시라도 회사명이 노출될까봐 회사 이름도 죄다 바꿔놨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며 나갔던 방송.


아마 지난 8년간 내가 했던 방송중에 반응이 가장 뜨거운 다큐가 아닌가 싶다. 시청률은 그저 그랬지만, 여느모로 보나 가장 많은 논쟁을 낳았던 다큐였으니. 예전에는 열심히 뒤져도 댓글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느날 MLB클럽, 오유, 딴지일보 등을 들어가보고 깜짝 놀랐다. 댓글이 1000개는 기본, 5,6천개씩 달려있는 게시물도 있었다. 블로그도, 카페도, 페이스북에서도 열심히 다큐내용을 캡쳐한 방송내용이 돌아다녔다. 다음날은 내내 실시간 검색어에 떠 있었다. 연락도 정말 여러군데서 받았다. 잘 봤다고. '올해 최고의 다큐'같은 낯간지로운 이야기들부터, 생각할 거리를 줘서 고맙다는 얘기들. 


사실 이 정도로 반응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나간 직후에야 깨달았다. 아, 사람들이 이런 내용에 많이 굶주렸었구나.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사람들은 이미 마음 속에 사표를 하나씩 품고 있었구나. 정말로. 



기왕 글을 쓰는 김에 좀 더 정리를 하자면, 내가 방송하면서 처음 시도해본 게 두가지 있다. 


첫번째로 '갈등'을 핵심소재로 차용했다. 그 전까지는 인물의 삶에 깊숙히 들어가는 휴먼다큐의 형식이나,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찾는 방식으로 하는 방송을 선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대갈등'이라는 큰 축을 중심으로 갈등의 현상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려고 했다. 이전까지 우리 방송국의 제작방식이 몇몇의 케이스를 중심으로 들여다보는 방식이었다면, 나는 보다 객관화된 '형식'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27명을 줄기차게 인터뷰했다. 


모든 현상에서 갈등의 대립점은 절대 무자르듯 떨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층위의 갈등이 늘 바오밥나무의 나뭇가지마냥 엉켜있다.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 신세대와 구세대, 남자사원과 여자사원 그리고 그 밑에 촘촘하게 있는 상무, 부장, 과장, 대리, 사원까지 늘어서 있는 중간자들. 큰 갈등축을 중심으로 대립하고 있는 수많은 관계들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신입사원의 대립지점에 있던 부장, 사장님, 부모님 등은 갈등축의 대척점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냈다. 공분을 일으키는 역할, 동시에 한번쯤 이들의 입장도 이해해볼 수 있게 들여다보는 역할. 쉽지 않은 섭외였는데, 지나고나니 꼭 필요했던 역할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갈등을 은근히 좋아한다.

 


또 하나는 형식적인 혁신. 마지막 스페셜이다보니 좀  새롭게 해보고 싶었다. 인물 모자이크 대신 가려야 할 인물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10년 전 피디가 되고 싶었을 때, 해외 다큐를 열심히 찾아봤었는데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다큐를 인상깊게 봤다. 내용은 다큐인데, 그림은 픽션이다. 일단 다큐를 다 찍은 뒤 다시 모든 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그때로서는 정말 혁신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큐에서 차용하게 됐다. 물론, 한국에서는 처음 써보는 기법이었다. 다행히 인터넷에서 적절한 레퍼런스를 찾고, 이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대표를 열심히 설득한 결과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냈다. 그밖에 소리에 따라 글자들이 움직이는 타이포모션그래픽, 그림 삽화를 애니메이션화하고 성우나레이션을 입혀 생동감을 준 효과, 그리고 요즘 잘 나가지만 그래도 단가는 시도해볼만한 핫한 배우들을 섭외해서 콩트를 찍었다. 


사실 콩트도 나름 모험이었다. 우리 스탭은 생짜 교양피디와 작가였다. 작가님도 베테랑이긴 했지만, 이런 식의 콩트는 처음 써본다고 했다. 처음 대본이 나왔을 때는 사실 좀 썰렁해서 걱정했었다. 다시 회의를 하고, 이런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똘끼 좀 있는'작가 후배를 한명 꼬셔 서너시간 회의를 하니, 머리가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실제 인터뷰이들과의 인터뷰가 가장 도움이 많이 됐다.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사무실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예절은 물론, 고기굽는 법, 술따르는 법 등 다양한 직장생활 예절들을 교육받아야 하는 서비스직,  술 문화가 너무 폭압적이어서 정말 매일매일 쓰러져서 집에 간다는 해양회사,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할 정도로 자잘한 디테일들에 집착해서 입사 이후 큰그림은 아예 보질 못했다는 건설회사. 

그런 에피소드들을 모으니 그 자체로도 콩트였다. 정리하고 다듬고의 과정을 거쳐 최종 대본이 나왔다. 촬영도 난항이었다.  배우들이 각자 시간이 안 나서 겨우겨우 하루의 시간을 내고, 그 시간안에 8개의 에피소드를 전부 찍어야만 했다. 피디생활하면서 이렇게 대충 대충 찍기는 처음이었다. 거의 모든 씬을 엔지 2,3번이 넘어가지 않고 진행시켰다.  다행히, 배우들은 배우 다루기에 익숙치 않은 피디를 위해 온갖 애드립을 치며 상황을 살려줬고, 편집을 좀 쫀쫀하게 하니 그나마 볼만했다. 특히 권혁수씨가 큰 역할을 했다. 


돌이켜보면, 큰 기대 없이 헉헉대며 완성이나 할 수 있을까,하며 작업했던 다큐다. 처음부터 섭외가 잘 되질 않아 안심할 수 없었고, 이렇게 해도 되나 되나..하고 의구심을 품으면서 왔다. 아마도 27명을 인터뷰한다는 형식부터, 미장센까지 모든걸 새롭게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주변의 의견을 물어 다들 합의가능한 선으로 끌고가니 그렇게 튀지도, 그렇게 모나지도 않은 공감다큐가 되어주었다. 지난번 편을 만들 때 주변사람들 의견을 너무 듣지 않아서 걱정된다는 선배의 조언을 듣고, 이번에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를 부지런히 들었던게 주효했던 것 같다. 



이번편이 어떻게든 끝났고, 이제 아침방송으로 간다. 후배들과 본격적으로 같이 일해보는 첫번째 기회다. 여러모로 기대된다. 다시 생방송을 한다는 것도, 좋은 추억이 많았던 프로그램에서 간다는 것도. 그리고 젊은 친구들과 으쌰으쌰할 수 있다는 것 모두. 어떤 방송을 하게 될지. 그 막연함으로도 설렌다. 

Posted by 시봉

아이를 왜 키우냐고 묻는다면,

아이를 왜 키우냐고 묻는다면, 카테고리 없음 2016. 8. 2. 10:39

내가 이현이를 왜 낳았을까, 이현이가 내게 갖는 존재의 이유를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현이를 갖게 된 뒤, 나는 비로소 '나와 부모'에 대해 좀더 이해하게 됐다. 나라는 사람은 어디서 훅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내 엄마의 살과 피를 먹고 자라나 내 부모와 형제들의 품 속에서 자라난 사람이라는 걸.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은 실은 책과 학교와 세상이 아니라 엄마의 품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훨씬 더 본질적이고 크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했던 것이 대체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비로소 알게 된다. '희생'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약간 겸염쩍은 부분이 없지 않지만, 아이는 어찌됐건 혼자서는 자랄 수 없다. 처음으로 댓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마음, 댓가가 없고 고통이 닥쳐도 참고 감내하는 마음을 경험해본다. 그 경험을 통해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어른들의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하나도 아프지 안고, 하나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보람이 되고 뿌듯한 마음. 우리 엄마도 힘들지만 그렇게 나를 키워냈다. 나는 비로소 우리 엄마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겠다.

Posted by 시봉

말귀

말귀 카테고리 없음 2016. 8. 2. 10:36

이현이가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한다. '주세요'하고 저어 멀리서 웃으며 물건을 가지고 온다. '쓰레기통에 버리세요'라고 하면, 과감하게 툭 던져 놓는다. 앉으세요,라고 하면 저벅저벅 걸어와서 털썩 앉는다. '말'을 알아듣는다,는 건 정말 신기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내가 하는 모든 대화내용을 듣는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이현이 앞에서 좋은 말, 도움이 되는 말만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 생각없어 보여도 아들은 내가 남편과 하는 말, 어머니와 하는 말, 친구들과 하는 말을 다 듣고 있다. 내가 하는 말들이 아들의 입을 통해 다시 흘러나오는 걸 보면 신기하다. 맘마, 까까, 응, 좋아 같은 단어들. 애매하게 입을 오므려서 어떻게든 비슷한 소리를 내려는 아들을 보면서 가슴이 벅찬다. 이렇게 하나하나 배워나가는거구나.  

Posted by 시봉

행복이 무어냐 묻는다면,

행복이 무어냐 묻는다면, 카테고리 없음 2016. 7. 6. 12:28

사표를 쓰는 사람들을 찍고 있다. 정작, 사표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 나다. 첫 직장생활, 첫 직업인 이곳에서 내리 쭉 8년을 주구장창 다녔다. 나도 기억을 더듬어보니 3년차 전까지는 꽤나 깔깔한 회사생활을 했던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공간에 들어가 정 붙이지 못한 상태에서 해내야 하는 일. 일. 그리고 일들. 빠듯한 취업준비생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한량 같았던 대학생시절에 비해 정말로 책임질 것이 확실히 생겼던 직장인의 삶이라는 건 확실히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제나 나에게 상냥한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다가 명령하는 이, 폭언하는 이, 욕하는 이, 거절하는 이들과 함께 일하기란.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복종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참는 것에 익숙해지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나 역시 겪었는데. 그런데 어느새 나는 그 많은 걸 겪다보니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좀 더 견뎌 볼 수는 없었을까'라고 묻는 '직장인 꼰대'가 되어있다.

 

이들은 행복을 찾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표를 쓴 뒤에 정말로 행복이 있을까? 안정감, 윤택함이 없는 상태의 허허벌판에서 주어진 자유 속에서 정말로 행복할 수 있을까?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큐가 끝날 즈음에는 알 수 있으려나.

Posted by 시봉

복직단상

복직단상 카테고리 없음 2016. 5. 4. 13:30

몇 달만에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다. 그만큼 하루하루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살았다. 휴직기간에는 이현이가 잠드는 8시 즈음부터 자정까지는 그래도 3,4시간의 내시간이 있었는데. 복직 이후에는 정확히 표현하면 단 하루도, 단 몇시간도 맘 편하게 쉰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매일 아침 6시 이현이가 깨서 내 입술이나 눈두덩이를 쥐어뜯는 고통에 일어나 뽀뽀를 해주고 몸을 쓸어주고. 그러다가 울면 부산하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산책을 나가고, 이유식을 데워 먹이고, 목욕을 시키다보면 다시 허겁지겁 출근을 해서 빡빡하게 촬영이나 편집을 하고 녹초가 되서 밤늦게 퇴근. 그러고나면  말그대로 세수만 하고 잠이 스르륵 든다는 느낌도 없이 정전처럼 띡 하고 잠이 드는 밤. 그런 낮과 밤이 교대로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건지, 배치된 프로그램은 그나마 내 스케쥴을 조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고, 같이 연출하는 친구는 이런 나를 최대한 배려하고 지원해주는 훌륭한 동료였고, 스탭들도 성실하게 잘 따라와줬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은 중간에 부침이 좀 있긴 했지만 크게 맘고생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제작했다. 그게 내 생활의 가장 큰 위안이었고, 일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시간이 막상 지나고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번은 어찌어찌 꾸역꾸역 왔는데, 앞으로는..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몇 주 전 옻닭을 먹고 옻이 올라와서 응급실까지 갈 정도로 아팠는데, 그때는 정말이지 앞이 막막했다. 당장 너무 간지럽고 몸이 아픈데 아이는 여전히 6시에 일어나고, 남편은 여전히 6시 30분이면 칼같이 출근하고 그렇게 어머니가 집에 오시는 9시,10시까지 견뎌야 하는 그런 시간들이 너무 괴로웠다. 당장 일어날 힘도 없는데, 십킬로그램이 넘는 아이는 여전히 보채고, 똥오줌을 싸고, 입에 우유를 물려줘야 한다. 조금만 쉬면 나을 것 같은데, 병원도 가봐야 하는데 편집일정은 밀려있고, 당장 아이는 내게 안겨서 놀자고 하는 날. 그런 날이면 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러워 눈물이 절로 났다. 

다행히 어머니가 아픈 와중에 성심성의껏 도와주셔서 어찌어찌 늦잠도 자고, 쪽잠도 자면서 휴식을 취했지만, 내가 당장 아프거나 없으면 생기는 빈구멍들이 보이는 상황에서 '엄마는 아프면 안되는구나'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는 자기몸을 잘 보전하면서 해야된다는 걸. 무리하면 안된다는 걸. 무리하면 그 여파가 아이한테까지 간다는 걸. 비로소 이해했다. 

그래서 시사프로그램 배치를 기다리고 있는 요즘은 걱정이 너무 많다. 시사프로그램. 당연히 하고 싶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고, 교양피디의 꽃이라는 말도 이해한다. 하지만, 도저히 엄두가 안난다. 지금과 같은 스케쥴에서도 도저히 쉴 틈이 안 나고, 잠은 늘 모자라고, 꾸역꾸역 해내고 있는데, 자기계발을 할 시간은커녕 시사교양피디로서의 기본인 신문 읽을 시간도 빠듯한데. 과연 시사프로그램을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도 저도 아닌. 죽도 밥도 아닌 상태로 1,2년을 보내고 나면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난 후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저 아래서 스물스물 올라온다. 

커리어를 좀 포기해서라도, 아니 좀 늦춰서라도 좀더 천천히 가야하는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조직에서 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은 내가 스스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스스로 손해를 보는 상황을 택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Posted by 시봉

낯가림 시작

낯가림 시작 카테고리 없음 2016. 2. 4. 17:07

이현이가 낯가림을 시작했다.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엄마가 곁에 있어야 좋아하고, 엄마가 곁에 있어야 안심한다. 

이 아이를 두고 회사에 나가야 한다. 

엄마들이 회사에 갈 때마다 눈물바람으로 가는 이유를 이제서야 비로소 알겠다. 

나는 과연, 제대로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요새는 이현이 생각, 정말 이현이 생각 뿐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의욕은? 글쎄, 어떻게든 굴러가겠지 싶은 생각밖에 안 든다. 


이현이는 잘될거다,라고 믿고 싶다. 

잘 적응할 것이다. 

Posted by 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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