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프로그램은 곧 하나의 세계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종의 '세계관'속으로 편입해 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존에 A라는 에고를 가지고 있는 피디가 있다면 프로그램 B 속에 들어가서 A+B의 가치 충돌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한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색깔에는 애초의 기획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 더 나아가 프로그램이 출연하는 사람들과 편집하는 이에 의해서 자체적으로 진화해서 만든 세계관이 숨쉬듯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전에 입사한 나는 지금까지 8개의 프로그램을 거쳐 왔고, 매번 일정 정도의 가치관 변화를 겪어왔다. 좋든 나쁘든간에. <동물 농장>에 있을 때는 그 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동물의 세계에 들어가봤다. 사실 동물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있어서 '관심밖'이었다. 애완견을 키워본 적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들의 깊은 내면 세계에 관심을 기울여 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 어쩌면 그건 동물이라는 존재가 분명한 물격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것은 '놔둬야 할 무엇'으로 느껴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한참 프로그램을 할 시즌에는 동물 심리 치유사 하이디라던가, 장애 동물들에 대한 관심이 한참 높던 시기라서 다시 한번 동물에게도 분명한 '마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한국에 이토록 많은 동물 애호가가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애완견을 데리고 생활하는 극성 애견인들을 만나게 됐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 에서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었다. '이상한 사람들, 뭔가에 미쳐 있는 사람들, 사람들이 놀리고 신기하게 들여다봐도 굴하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 말이다. 순간포착에선 매번 아이템을 나갈 때마다 은근히 감동받고 돌아올 때가 많았다. 아마도 그건 '보통 사람들의 힘'을 느낄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지언정, 제 나름의 취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 특별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총을 살지언정 최소한 '스스로'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되려 그 집중력으로 말미암아 삶이 활기차 보였고, 자신의 부박한 상황을 이겨내고 있었다. 그게 매번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프로그램의 색깔이 조금 가볍고 장난스러웠을 지언정, 프로그램을 만들 때만큼은 '튀는 것'이 가진 가치,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뭔가를 하는 것'의 가치, 무엇보다 장애와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모닝와이드에서는 본격적으로 '나의 세계관'을 프로그램에 투영시킬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꼭지를 기획하고, 이름을 짓고, 리포터와 함께 하면서 나의 진짜 취향이 무엇인지 재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그때 했던 [생활의 재발견]이라는 코너는 말 그대로 '생활'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밥먹고, 살림하고, 자고, 싸고, 운동하는 생활 전반의 리듬을 어떻게 꾸려나가느냐에 따라서 나의 하루가 더 나아가 나의 1년이 달라진다는 것을. 그때 각종 전문가를 찾아다니면서 배웠던 팁들이 내 생활에 상당히 영향을 끼친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무작정 진지한 것을 찍기보다는 가볍고 발랄한 터치가 있어야 스스로 재미를 느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스로 진지한 걸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나는 '재밌어야'스스로 만들고 반응하는 스타일이었다. 몸으로 움직이면서 배웠다.
하나의 세계관에서 빠져나와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계관 속으로 들어갔던 프로그램은 '황금나침반'이었다. 초반에 소위 '텐프로'를 섭외했다고 했을 때는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당시 텐프로는 텔레비전에 나와서도 안되었고, 나올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건지, 나 역시도 처음엔 노이즈 마케팅, 혹은 정말로 진심이 없는 기획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세계관이 바뀐 것은 녹화를 한 뒤였다. 주인공인 모양은 20대 중반의 여성인 내가 접할 수 없었던 부류였다. 그녀의 앵앵거리는 목소리나 여우 같은 손짓들은 정말이지 낯설었다. 동작하나하나가 '욕망'을 그리고 있었다. 그 욕망은 돈, 그리고 그 돈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탐욕. 예쁘고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그것을 쉽게 얻고 싶어하는 편한 심리였겠지 아마도. 그런데, 무작정 멀게만 느꼈던 그녀가 꺼내놓은 욕망의 말들 속에서 '욕망이란 제어하지 않을 때 멈추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 속 응어리가 터지듯.. 굉장히 현실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어쩌면 그녀와의 만남은 나 역시 가지고 있었던 욕망을 확대해서 현미경으로 보는듯한 느낌이었고, 그 욕망이 지나치게 확장되었을 때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짝>이야 말로 내 세계관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동안 '남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갖고 있던 관음증적인 궁금증을 가장 많이 해소하게 된 프로그램이다. 더 나아가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내옆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해왔다 . 하지만 <짝>을 통해서야 비로소 '짝'이라는 존재는 나에 의해서 변하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상대방이 지닌 '성정'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의 궁합, 나와의 '관계성'에서 만들어지는 '아우라'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 내 짝이 남을 대할 때의 태도가 중요한게 아니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취하게 되는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계열 할머니 부부를 통해서 깨달았다. 무엇보다 짝은 배려인 동시에 '머리 싸움'이라는 것. 내가 어떻게 하면 이익을 더 취할 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더 잘해줄까'를 고민하는 헌신의 과정이고,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잘해나갈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각인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짝을 하면서 또 하나 느꼈던 점은 세상의 수많은 갑남을녀 중에서 내가 가장 강렬하게 끌린 사람은 지금의 짝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떨리는 감정을 전달해 준 이들도 많고, 때로는 나를 고민에 빠드린 사람도 많지만, 언제나 '이 사람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라는 생각을 마음 속 깊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남이 부럽거나, 특별히 질투가 난적도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정말이지 내 성정이 닿지 못했던 세계. 동물농장과는 또다른 의미로 '한번도 염두에 두지 못했던 자들의 세계'였다. 바로 범죄자와 피해자, 경찰과 그들을 추적하는 재미로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세계. 평소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인물들의 세계였다. 화성연쇄 살인사건을 하면서 나는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늘 공포에 시달렸다. 그것을 상상하는 일 조차도 너무 괴로웠지만, 나와 선배는 꾸역꾸역 시체의 사진들을 들여다봐야했고, '공포'라는 정서에 익숙치 않았던 내가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어떤 방법으로 범행이 이뤄졌는지, 범인이 누구일지 등을 추적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것은 일종의 진지한 '게임'같은 것이었다. 굉장히 고통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짜릿한. 그때 처음으로 '형사'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좀 알 것 같았다. 목표물을 잡고 나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는 관성. '불의에 싸우기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라는 거칭한 목표가 아니라 '놈을 잡기 위해서'가 그들이 움직이는 동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더불어서 범죄자가 길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게 분명히 있다는 사실도 몸으로 체감했다. 범죄는 결국 범죄적 환경 속에서 재생산 될 수 밖에 없고, 그런 폭력의 순환고리는 결국은 가족과 친족집단을 통해서 계속해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슬픔의 사슬,을 눈으로 확인했다.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하면서 '슬픔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보게 된 느낌이다. 남들이 한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 중에서도 가장 크게 괴로운 감정이 바로 '살해당하고, 납치당하고, 성폭행 당한'자들의 아픔이라는 사실을. 내가 사랑하는 피붙이가 겪는 가장 큰 상처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지배하고 있는 우울한 감정은 매번 나를 묵직한 무거움 속에서 지내도록 이끌었고, 무엇보다 귀가길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화성 살인사건의 시체들은 정말이지 내가 프로그램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심약한 마음상태와 연일 이어지는 야근으로 인해서 생긴 몸상태가 엉망이었다.
어찌됐든 진화에 진화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게 된다. 산다는 건 참 신기하다. 결국은 걸어온 길에 따라서 겪어온 프로그램에 따라서 '인격'이 형성될 수 있다는게. 나의 세계관이 형성된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