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인가.

우울증인가. 카테고리 없음 2015. 6. 18. 11:15

감정 변화가 극심하다. 이사를 온 뒤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엉엉 울어버린 게 벌써 두번째다. 한번은 남편의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극도로 복받쳐서 품에 안겨 엉엉 울고, 나머지 한번도 남편이랑 전화통화를 하다가 평소에 싸우지도 않을 법한 시덥잖은 주제로 말다툼이 벌어져 그만 길거리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휴지가 없어서 가방 안에 있는 옷가지는 다 꺼내서 닦아도 젖을 정도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결국 아무도 보지 않는 골목길에 들어가 바닥이 찬바닥이건, 시멘트건 상관 않고 앉아서 한시간을 넘게 끄억끄억 울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 성질의 억울함, 서러움, 복받침 같은 감정들이 내 안에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임신 말기에 흔히 찾아올 수 있는 우울증이라고 한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호르몬의 변화와 복합적으로 일으키는 거라고. 대충 그런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놈의 호르몬은 평소에는 생리기간에 온갖 짜증을 불러오더니 임신 막달에는 정말이지 통제할 수 없는 감정상태를 안겨준다. 특히나 이번주에는 스무살 무렵에나 보이던 극도의 '예민한 감수성 상태'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녁이 될때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사 온 뒤  아파트 앞 뒤에서 진행하는 공사의 미세한 소음(결코 미세하지만은 않다. 문을 다 닫아놔도 굴착기 소리가 다 들려 마치 뇌를 뚫는 것 같은 기분이 들때도 많다.)에도 신경이 곤두서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 때문에 눈물이 또르르 떨어진다. 누군가는 호의로 나에게 베푼 친절마저도 귀찮고 싫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힘들겠다며 들고 오신 반찬거리도 간섭같이 느껴지고, 친동생이 이삿짐을 날라주러 오겠다고 해도 귀찮다.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고 절실하면서도 막상 누군가를 만나면 친절하게 굴질 못한다.

모든 엄마들이 크든 작든 이런 과정을 겪는거라고 한다면, 참 놀라운 일이다. 다들 평화롭게 아기를 낳아서 키운다고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던걸까. 인류의 절반인 여성들이 삶을 살면서 대부분 겪는 출산의 과정에서 감정의 진폭을 경험한다고 하니,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고 수많은 여자들이 정신병원에 찾아가고, 또 화병이 생긴다는 게 전혀 이상해보이지 않는다. 이제서야. 새삼스레.

어찌됐든 출산은 이제 정말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기대되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 누구나 말하듯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라는 말을 상기하며 하루하루를 야금야금 아끼듯 살아가고 있다. 참 이중적인 감정이다. 아이를 만들고 싶어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건만,  막상 태어날 때가 되니 태어날 날들을 유예시키듯 아끼게 되는 이 모순적인 감정. 워낙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걸까.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요즘 정말이지 복잡하다.   

 

Posted by 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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