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관 아줌마. 서관 로비에 가끔 앉아있는 노파를 우린 그렇게 불렀다. 그녀는 비오는 날이면 가끔씩 나타나 학생들에게 100원, 200원씩을 달라고 해 자판기 커피를 뽑아마셨다. 자주빛 솜옷을 껴입은 채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는 그녀. 입학한지 5년이 지나 졸업을 앞둔 지금도 그녀는 서관 로비를 지킨다. 도대체 언제부터 학교에 들어와 있던걸까
.지난 겨울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학생과 교수가 아니더라도 대학을 배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중앙도서관은 원래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라는 게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걸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됐다. 우선, 학생증이 없어도 '급한 사람'은 들여보내준다. 또, 떼쓰고 울부짖는 사람들도 들여 보내준다. 무엇보다, '출입카드'가 없어도 아주 예전부터 도서관을 찾던 낭인들은 암묵적으로 들여 보내준다. 그래서 도서관에는 학생도, 교수도, 교직원도 아닌 낭인들이 군데 군데 섞여 있다. 도서관에서 만나는 그들의 옷차림은 꾀죄죄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품위마저 포기하진 않는다. 목욕은 못해도 세수는 한다. 옷은 남루해도 냄새는 나지 않는다. 단정하진 않지만, 지저분하지도 않은 행색이다. 그들의 '도서관살이' 역시 의외다. 열람실에서 책을 보기도 하고,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또, 오랜시간 컴퓨터에 앉아서 이런저런 문서를 끄적이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옆에서 관찰한 그들은 말그대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100원짜리 커피를 뽑아마시는 걸로 소일하던 서관 아주머니도 대부분의 시간은 학교 어디선가 신문이나 책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나의 호기심을 무한대로 자극했다. 어려운 일본신문이나 고서를 넘겨보는 저 아주머니의 눈빛. 하지만 그렇게 반짝 거리면서 신문을 넘기던 그녀는 학생회관 식당에서 밥과 국으로 900원짜리 식사를 한다. 구석진 곳에 유령처럼 앉아 오물거리는 그녀는 외롭고 처량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말을 걸어보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워킹맨>을 본 뒤 나는 한동안 그녀를 계속 생각했다. 주인공인 빅토르 역시 말년을 파리의 소르본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원래 시인이었던 그는 한때 68이 가져다준 '집단적 지성'의 후원과 지지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의 난해한 시는 정신분석학이 한때를 풍미했던 것처럼 한때의 '유행'일 뿐이었다.
그렇게 파산한 그가 대학을 찾아간 이유는 한가지다. '삶과 지성'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방학이 된 기숙사에 몰래 들어가 잠을 자고, 학생식당의 뒷구멍에서 조리사들에게 음식을 구걸해 먹는다. 도서관과 공원을 떠돌기도 한다. 그의 옷자락은 거죽처럼 늘어져 있지만, 아침마다 1회용 면도기로 수염을 깎고, 모자를 쓴다.
영화를 본뒤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그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건 뭘까 잠시 고민해본다. 나로서는 알길이 없다. '위대한' 프랑스에 살면서도, 지원을 받길 거부하고 대학으로 숨어들어간 그의 심정이. 실상 그곳에서의 삶은 '자유'나 '지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굶주림의 해소와 지성에 대한 열망 그 어느쪽도 아니었다. 마냥 어중간하기만 했다.
분명한 것은 유령 같은 누군가에게도 떠돌기 이전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관 아줌마도 <워킹맨>속의 빅토르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떠돌던 빅토르가 원했던 공간은 어쩌면 안락한 삶의 공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난해한 시를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와 공상의 세계였다. 그래서 택한 마지막 도피처가 대학이었다. 학교를 떠도는 서관 아줌마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녀가 100원을 구걸해서 마시는 커피한잔도, 고독하게 파묻혀 읽는 신문도 아마 그녀가 가진 마지막 '품위'이지 않았을까.
다시 찾아간 학교에서 서관 아줌마를 만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의 창창한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잘은 몰라도 저 일본고서를 읽기 위해 학교를 다녔을 수도 있고, 곱게 화장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대학에 다녔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과거보다 궁금했던 질문도 있다. '당신은 지금 이곳에서 어떤 꿈을 꾸냐고' 머릿속에 집어넣는 텍스트의 세계에는 무엇이 있냐고. 하지만 나는 용기가 없다. 남루한 그녀에게 다가갈 용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