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잇기.

말잇기. 카테고리 없음 2008. 8. 18. 19:35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더이상 말을 이을 거리를 찾지 못하는 순간 만큼 슬픈 것도 없다. 그것은 단순히 대화소재가 부족한 탓이 아니다. 혹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의견 대립의 탓도 아니다. 모두 '맥락'의 문제다. '그렇지'하고 고개 끄떡일만한 대화거리는 동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해'에서 나온다. 그것만 있어도 이야기는 계속 터져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감정의 미세한 결을 들여다 볼 의향이 없다면, 그때부터 대화는 겉돌기 시작한다. 내 안에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생각들은 슬며시 입을 다문다. 아지랑이처럼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그어올리던 상념들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대신, 그 사람의 대화를 반박, 무시,종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말들만 붙들어 두게 된다. 때로는 그 최소한으로 최대의 시간을 이어나가야 할 때가 있다. 둘다 대화할 의향이 없음에도 얘기는 이어져야 한다. 무서운 침묵을 감당하기 위해. 혹은 봇물처럼 터져나올 최대한의 말들을 틀어막기 위해. 왜? 둑에서 터져나온 말이 그 사람의 귀로 흘러들어갈 일은 없으므로. 흘러넘쳐 버려질 말을 무엇하러 하는가.

말을 한다는 것은, 할말이 많다는 것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할테니 나를 들어주오. 내 말들을 쓰다듬어 주오. 입맞춰 주오. 나를 사랑해주오.

하지만 침묵의 흔적이 드리우면, 사랑할 의지는 저만치 모습을 감춘다. 사랑은 말의 다리를 건너 상대방에게 도달한다. 하지만, 그 다리를 이을 거리를 찾지 못하면, 슬픔 뿐이다. 그래서 더이상 할말이 없는 상대는 사랑할 수가 없다.

Posted by 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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