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지체 장애인. 더구나 소화문제 때문에 냄새나는 배설물 주머니를 항상 달고 다녀야 하는 사람을 데리고 '100%無연출'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한사람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사건'이기 때문이다. 뷰파인더를 계속해서 의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더구나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사람을 몇명일지라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쳐라. 분명 마음에 수백개의 파문을 만들어내리라.
여기서 몇가지 의문이 생긴다.
촬영에서의 방법론. 카메라를 들때, 마음의 파문이 잔잔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게 맞는걸까. 아니면 어차피 '사건'이 벌어진 이상 만난 직후부터의 상태를 자연스럽게 기록하는 게 맞을까.
허나 여기서 또 의문. 누군가와 교감하기 시작한다는 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을 만나기 이전상태로는 완벽하게 돌아설 수 없다는 걸 의미할텐데.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이 헤어진다고 다시 되돌아갈 수 없듯이.
카메라가 들어간 누군가의 일상도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일상'이 아니지 않은가. 정확하게 말하면, 촬영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모든게 일상의 '변주' 혹은 일상을 '연기'한 것이라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연출을 허용할 수 있는걸까. 어차피 시간과 재화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 사람이 매일매일 할법한 일들만을 '요청'해서 다시 찍는게 맞는걸까. 아니면, 이전에는 전혀 없었으나 촬영팀의 '난입'으로 인해 얼떨결에 하게 된 행동들을 기록하는게 맞는걸까.
답은 없다고들 한다. 그 어느것도 진실이 아니라고 볼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몰래 찍지 않는 이상 양측 모두 카메라가 들어가는 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실제보다 근사한 행동들이 나올 수도 있고, 어쩌면 카메라의 용도 자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장난감'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출은 불가피하다. 그건 촬영지에서의 '한계라고 단정짓기에는 좀더 복잡한 문제다. 과연 대상을 찍는 사람이 '무엇'에 주목하느냐의 문제에 더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애초에 편집과 구성 자체가 연출을 동반한다. 하지만 촬영은? 촬영현장에서 무엇을 선별하고, 주목할 것인지는 다른 문제다.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