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를 갔던 이유

덴마크를 갔던 이유 카테고리 없음 2016. 1. 7. 02:56

최근의 여행기들을 살펴보니 모든 '떠남'에는 그때 그 순간 내가 놓여진 상황이나 감정이 다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인도여행은 정말이지 숨돌릴틈 없는 프로그램 제작의 와중에 '현생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의 삶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와중에 '돈이 없어 버스를 못 탔다는 인도할머니를 보고 그지 같은 버스도 럭셔리 버스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담은 원모어타임의 '럭셔리버스'를 듣고 삘이 제대로 받았었다.  페루 역시 1년 간 장기다큐멘터리를 하느라 소진되어온 몸을 마추픽추의 거대한 산맥에서 쉬게 해주고 싶었다. 뉴욕은 반대로 새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직전, 기획안도 계속 거부되고,  한참 아이디어가 부족할 때 활기찬 영감을 얻기 위해 다녀왔고, 유후인은 살인사건과 세월호 사건을 취재하면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동심의  기억을 품고 있는 토토로의 숲에 가서 쉬게 하고 싶어 갔었다.

덴마크와 핀란드를 간 계기는 이랬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는지 보고싶었다. 물론 디자인이나 자전거나 도시계획의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앞이 깜깜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맘충'들의 나라인 헬조선에 살면서,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숨통트고 살 수 있는지 '실제로 숨 훅훅 쉬면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이 낳는 일이 괴롭지만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면, 도대체 일까지 하면서 이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래서 정말 큰맘 먹고, 남편에게 흔쾌히 허락을 받고, 친부모님께는 프로그램 헌팅을 간다는 명목으로 아이를 맡긴 채 그동안 아껴뒀던 휴직비를 긁어모아 북유럽으로 떠났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는지' 깨달았냐고? 결론을 얘기하면 힌트는 많이 얻은 것 같다. 떠나기 전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네들은, 그러니까 우리랑 똑같이 일하고, 아이 낳고, 키우는 그네들은 정말 '행복'해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자신들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여행을 가면서 현지인들이랑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고, 의견을 구했다. 얘기를 나눠본 이들은 경제구조나 사회적 합의라는 시스템과 별개로 그냥 개개인이 갖고 있는 성정, 마음의 상태가 우리네보다는 훨씬 더 편안해보였다.

그게 마냥 부럽기도 했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게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한다는게 끝이 안 보이는 컴컴한 해저터널을 지나가는게 아니라, 때로는 예측가능하고 즐거운 요트여행같은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어쩌면 마음먹기에 따라, 내가 조금씩 변화시키는 삶의 방식에 따라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자세한 얘기는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나가보기로 한다.

Posted by 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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