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 교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 한가지.
신영복 교수에 대한 부분을 읽는데, 택시 안에서 괜시리 눈물이 났다. 책을 보면서 내용이 감탄하기보다는.. 그냥 대단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이 되서 그런 것 같다. [감옥에서의 사색]에서 그는 정말이지 엄청난 의지를 보인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의연하고 꼿꼿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의젓한 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안 그래도 미안한 가족들한테 구구절절이 내가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고, 하는 걸 어떻게 얘기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나 잘 살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한거다. 물론 그 과정속에서 본인 스스로도 '잘살아야지'라고 다짐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더라. 수감된 사람 중에는 꼭 죽어라 미운 사람이 한명 정도는 있어서 그 사람이 어서 나가기를 바라는데, 그 사람이 나가고 나면 처음엔 속이 시원하다가도 꼭 또 한명 싫은 사람이 생긴다고. 내가 딱 그 닮은 꼴이라서 엄청나게 공감했다. 회사에 입사한 이후 단 한해도 그런 사람이 없었던 해가 없던 것 같다. 동물농장이랑 순간포착을 할때는 ㅅ 선배가 정말 진저리 나게 싫었고, 짝을 할 때는 ㄴ선배가 참 싫었고,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할 때는 범인이 참 싫었고, 한밤의 TV연예에 와서는 팀장이 참 싫다. 어떻게 보면 팀을 옮기고 나서는 다들 잘 지내고, 그때 혼나고 정말이지 진저리나게 싫었던 기억들도 나름대로 '교훈 삼아서' 괜찮았다고 기억속에서 추스리는데, 지금 되돌이켜 보면 그 순간만은 그 사람들이 정말이지 싫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건 물론 그 분들이 성격이 좀 독특한 것도 있겠지만 어찌보면 힘든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방송 만드는 일이 힘들고 고달프니까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스스로 안에서 적을 만들어온거다. 한밤의 TV연예가 꼭 힘든 프로그램은 아닐터지만 어찌됐든 '욕할 대상'이 필요한거다. 어쩌면 나에게는. 스스로 애매하게 그런가보다하고 있다가 신영복 교수의 말을 듣고 '앗 나도..'하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말이 굉장히 위안이 됐다. 이 사람도 결국에는 강철이 두드려지면서 단련되듯이 어쩌면 시련 속에서 단련된 사람이구나. 애초부터 이랬던 건 아니구나. 하는 위안 같은 것.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과정으로서의 삶'을 살라는 얘기. '목적'을 두고 사는게 아니라 현재의 삶을 살아가라는 이야기가 가슴에 박혔다. 생각해보면 하루하루가 그냥 행복하고, 자기를 닦아나가는 수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목적'을 정해두고 '이것만 끝나면...'하고 견디는 날들이 반복되다보면 하루하루가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결혼식'을 해치워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지난 몇주간이 조금 부끄럽다. 인테리어어도 그냥 마음 편하게 '하면서 살자'라고 생각하고 나니 후련하고, 다큐멘터리도 대단한 걸 만들자, 라기보다는 그냥 소박하게 되는대로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하니 편안하고, 뭐 다른 것들도 나름대로 살아가면서..라고 생각하니 할만하다. 정말 그렇게 되고나니 결혼이라는 게 생각보다 마음이 편한건데.. 이제는 '자유를 박탈당한다'라고 부담을 가지기 보다는,,, 변화를 최소화 시키고 서로에게 지나치게 변화를 강요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친구들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병성이가 어찌 하루 아침에 바뀔거고, 무심하고, 잘 치우지 못하고, 살림 못하는 내가 어찌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겠는가. 어찌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그렇게 합쳐지는 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게 내가 결혼에서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이 오랜만에 나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