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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전시]김종학, 多情

시봉 2013. 1. 12. 16:41

언젠가 다큐멘터리를 하면 이런 것들을 가지고 해보고 싶다. 편지, 일기, 아무에게 보여주지 않은 습작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들을 가지고 . (나는 이런 것들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파리의 중고시장에서 '연애편지'들이 거래된다는 얘기를 듣고 파리 중고시장에 가고 싶어졌으니) )맥락 속에 숨어있는 작자의 생활을 들여다보는게 1차적인 재미다. 무엇을 먹었나, 어디에서 살았나, 어떤 가족을 이루고 있나, 애는 몇이고 몇살인가. 그 다음에 개인이 주변의 것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이 드러난다. 그것이 사랑이든, 그림이든, 돈이든, 직업에 대한 열정이든. 사람에 대한 감정이든. 무엇보다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정제된 글에는 개인의 욕망이 변형된 형태로 읽힌다. 하지만 일기나 편지는 보다 직접적이다. 그건 거칠지만 '고백'에 좀더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라면 사랑을 하는 마음이 아낌없이 담겨져 있고, 그에 대한 바람들이 아주 직접적으로 담긴다. 편지는 그래서 참으로 매력적인 문학이다.

김종학의 전시는 '편지묶음'이었다. 십수년간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가 주다. 화가 아버지 답게 종이는 아무거나 쓰더라도 그 위에 꼭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이 그의 아내에게 썼던 편지들에서 그의 아이들과도 같은 벌거벗은 소년과 게, 물고기들이 등장했던 것처럼, 김종학의 편지에는 꽃과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그의 꽃같은 아이들 같은. 나비처럼 부모곁에 머물지 못하고 늘 날아다니는 아이들 같은. 부모는 늘 아이들에게 기대하고, 격려하고, 실망하고를 반복한다. 고교생인 딸에게는 늘 건강을 돌보고,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한다. 대학에 들어간 딸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자세에 대해 알려준다. 항상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것,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것, 자연을 관찰해야 한다는 것. 혼기에 접어든 딸에게는 배우자를 대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자신은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해 딸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엄하고, 할말이 많았던 아버지는 어느 순간에는 쉽게 조언을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확신에 차서 꾸짖다가도 때로 자신도 망설였던 인생의 곡절에서는 자신도 모자란 사람이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얘기한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끊임없이 피붙이에게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영속성이 바로 부성이고, 모성이다. 분명 이렇게 다정한 아버지였으나, 그 또한 삶에서 보면 편지만큼 아름답고, 따뜻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한국의 다른 많은 아버지들처럼. 그 미안함, 하지만 예술가로서 자신의 주변의 것들을 아름답게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모습만은 편지 한줄 한줄에 묻어난다.

그 감정이 오롯이 드러나있는 편지들을 읽으니 갤러리 안에서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