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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느낌

시봉 2011. 11. 18. 11:38
나에게 예술이 뭐냐고 물으면 '느낌'이라고 할 것 같다. 이건 과학이 뭔가, 정치가 뭔가 하는 느낌과는 좀 다른 것이다. 대개 느낌이란 몸을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이다. 윤곽도 없고, 무게도 없다. 하지만 일렁임 같은게 있다. 예컨대 과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물성, 같은 게 느껴진다. 실험실과 원폭과 전자기기들이 갖고 있는 차가운 물성과 그 내부를 파헤쳤을 때의 치밀한 조합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건 느낌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어떤 분위기다. 바람의 일렁임 같은. 그 일렁임은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나에게 어쩐지  눈 똑바로 뜨고 보고, 치밀하게 생각하라는 암시를 하는 듯하다반면 정치는 나에게 '설득'이다. 치열하고 뜨겁고, 지저분하다. 손이 악수를 나누고 마주쳤을 때 뿜어내는 열기와 손가락에 묻은 체세포들이 서로 교환되는. 과학과는 다른 공감각적인 기분이 들게끔 한다. 집회 현장에서 군중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나 촛불들의 일렁임, 투표용지의 조악함. 단상과 마이크와 금방 사그라드는 허망함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그런데 아까의 얘기로 돌아와서 예술은 정말이지 느낌,이라는 느낌 ('느낌이라는 느낌'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긴 하다.)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대상을 마주했을 때 내 맘속에 들어오는 출렁임이 훨씬 즉각적이다. 굳이 표현하면 온갖 색깔을 섞어놓은 고무 찰흙덩어리, 아니면 어릴 적 주유소 근처에서 자주 발견하곤 했던 휘발유의 무지개색깔과도 같은 그런 끈적거리면서도 다채로운 무언가가 훅,하고 끼얹어지는 그런 기분이다. 바람으로 치면 폭풍우다. 무게도 냄새도,형체도 없지만 몰아쳐서 들어온다. 응당 예술은 그래야 하는 것 같다. 보는 순간 무언가 전달 되어오는게 없으면 대개는 시간이 지나도 그 느낌이 커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보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다른 느낌들로 전이되고 변형되어 오는 작품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첫 느낌이 아예 없는 경우에는 그러기가 어렵다. 대개는 잊혀지고 만다. 영혼이 없고, 열정이 없다. 그걸 만든 작가의 눈빛을 바라보면 흐리멍텅할 것 같고, 거짓될 것 같다. 강단앞에 서서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이론들을 늘어놓고, 밤이면 룸살롱에 가서 옆에 있는 여자의 가슴을 쓰다듬을 것 같다.  그런 그림들을 나는 최근에 많이  봤다. 대개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3,4층에 그런 작품들이 많다. 도록을 다 뒤지고 수십호를 봐도 도무지 아무런 '느낌'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살며시 그들의 작품 옆에 붙어있는 사진을 보면 내가 예상했던 그런 얼굴들을 하고 있다.
반면 그 일렁임이 격정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들도 있다. 우연히 발견한 것일 수록  느낌이 좋다. '전달하고 싶다! 전달하고 싶다!'가 아니라 '토해내고 싶다! 어떻게든 분출해내고 싶다!'라는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좋다. 영화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퍼포먼스든. 그게 아니면 나는 입을 열길이 없어, 나는 말을 할 수 없고 글로 쓸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너에게 보여주겠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얼마전 문래동에서 봤던 퍼포먼스도 그랬다. 한바탕 꿈을 꾸는 듯했다. 술을 마신 것처럼 몽롱했다. 그리고 또다시 가슴속에 폭풍우가 쳤다. 바람이 밀려들어와 북처럼 가슴을 뒤흔들어놓고 나갔다. 같이 갔던 이도 똑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 휩쓸려갈듯한 촉감, 바람처럼 무취한 듯하지만, 향수처럼, 걸레처럼, 분뇨처럼 강렬한 향을 품고 있는 것들. 그게 바로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