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크판

선배가 떠났다.

시봉 2015. 11. 9. 16:14

나의 사수였던 선배가 회사를 떠났다. 정년퇴임도 아니고, 다른 회사로 스카웃이 된 것도 아니고. 그냥. 본인이 원해서 떠나는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20여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셨다.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딱 4년 전 거의 매일같이, 24시간 중 15,16시간씩 1년여의 시간을 보내던 사이다. 당연히 선배는 연출, 그리고 나는 조연출. 선배는 일에 모든걸 다 바치던 사람이었다. 늘 일이라는 수영장에 풍덩 뛰어들어가 당최 나올 생각이 없는 아이 같아 보였다. 밤을 새는 일은 부지기수고, 매일매일 머리를 쥐어싸매면서 구성이나 섭외를 고민했다. 선배는 늘 그렇게 말했다. '살면서 몸을 부서지게 못 쓰면 그만큼 아까운 건 없다' 그렇게 뼈가 사그라드는 기분이 들때까지 일했다. 그리고 그렇게 거의 동거동락했던 1년이 지난 뒤엔, 3편의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나는 선배에게 많은걸 배웠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것을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있겠다. 좀더 정확하게는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하는 기술적인 것들 말고. '피디가 되는 법'을 배웠다. 기획을 어떤식으로 해야하는지, 촬영을 할 때 출연자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새로움을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  아이디어가 있을 때 어떻게 윗사람을 설득하는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닥칠 때 어떤 마음자세로 돌파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지.

선배 덕분에 나는 소위 말하는 '질적인 변화'를 많이 겪게 됐다. 생각해보면 나는 피디에 대해서 굉장히 오소독스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정의로운 얘기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다시 되돌아봐도 많이, 순진했다.  선배는 항상 '복이 맛있는 건 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다. 절대로 사람들은 '착한 프로그램'은 보지 않아. 어떻게든 사람의 욕망을 건드리는 약간은 비릿하고 간지러운 구석이 프로그램속에 있어야 한다,고. 선배가 늘 했던 얘기엔 이런 것도 있었다. '너는 너무 착한 것 같아. 그렇게 착해서는 좋은 프로그램을 못해'라고 했다. 그 말이 그때는 참 듣기 싫었다. 20대 후반 여자애가 착하면 얼마나 착하다고. 그런데 조금은 세상의 때가 묻은 요즘 그 말을 곱씹어보면, 때가 묻어야만 세상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는 말로 다시 들린다. 기왕에 사람들이 만들거라면 조금은 때가 묻어도 볼만한 것, 그리고 뭔가 가슴에 남을만한 걸 만들자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하게 됐던 것 같다. 그 두마디는 나중에 새 프로그램을 만들 때 그 말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사람들은 선배를 싫어하면서도 좋아했다.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거랑은 좀 다르다. 기본적으로 조금은 싫어하는 정서를 깔고서도, 일을 하면서 그를 좋아하게 됐다. 워낙 괴짜같고, 일 중독에다가, 사람을 죽어라 부려먹고, 의사소통이 쉽게 되지 않고, 했던 걸 마구 뒤엎기 일쑤. 일이 최선인지라 스탭들의 복지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선배. 하지만 본인도 모든걸 다 바쳐서 일을 했고, 그 모습이 너무 순수해보였기에 사람들은 그 선배랑 일할 때만큼은 '올인하자'라고 생각을 했다. '대충 해야지'라고 하는 것과 '올인하자'는 마음의 자세를 달리하는 건 당연히 결과의 차이를 가져왔다. 프로그램들은 평가가 좋았다. 새로웠고, 또 깊이도 있었다. 무엇보다 굉장히 재밌었다. 소위 말하는 스타피디로서의 카리스마와 자질을 갖고 있던 셈이었다.

그런 선배가 떠난다고 한다. 같이 밥을 먹는 마지막 자리에서 선배는 '산에서 인생을 배워야지'라고 얘기했다. 딱히 거취도 정하지 않고, '여기서는 더이상 할게 없는 것 같아'라며 떠나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가슴 한켠이 허전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그동안 만들었던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했는지, 기존에 만들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무엇인지. 열번을 토하는 모습에서 '변하신건 하나도 없네요.'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선배는 정말 뼛속까지 피디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