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문고의 기억
다시 돌이켜 봐도 그 해 여름은 뜨거웠다. 날도 뜨거웠지만, 정말 속이 부글부글 끓었던 여름이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알게 된 또래 친구 몇몇이 모였다. 뭔가 불만이 너무 많아서 토해내지 않고서는 못배길 것 같은 시간이었다. 게시판에 학교와 공교육 시스템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걸 보고선 몇몇이 모여 토론을 하고, 몰래 맥주를 마셨다. 더러는 연애도 하고, 스티커 사진도 찍으러 다니기도 했지만 몇몇은 어울리지 못했다. 그렇게 남겨진 세명이 모였다. 결국 중간에 한명은 빠져나가고, 나머지 한명도 발뺌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2명이 없었으면 시작하지 못할 일이었다. 마치 운동권 선배가 우렁차게 후배한테 서클 가입을 권유해놓고선 자기가 슬그머니 취업해버린 형색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상문고에 처음 갔던 날을 기억한다. 강남 8학군답게 번듯하게 지어놓은 학교 운동장 바로 안에는 운동장의 3분의 1을 떡하니 차지하는 골프장이 있었다. 재단에서 학생들을 시켜 골프공을 줍게 만든다고 한다. 거기에서 나온 돈은 고스란히 교장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고도 했다. 일본제복을 연상시키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돌아다녔다. 누군가가 이 학교에는 체벌실이 있는데, 온갖 고문도구가 가득하다고 했다. 대공분실 만만찮은 곳이라고 했다. 김진표는 이 곳에 들어가고 나온 뒤 패닉 1집에서 학교를 저주하는 노래들을 불렀다. 학생들을 지나쳐 건물에 들어가니 굳게 잠겨진 교장실이 있었다. 교장실문을 똑똑 두들기니 교장이 아니라 학생이 빼꼼하게 문을 열고 나왔다. 소위 말하는 '점거'라는 걸 해놓은 상태였다. 동갑내기 여고생이 모자를 눌러쓰고 온 것을 보고 남학생은 놀란 듯했다. 그리고선 '조심해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묘한 긴장감이 일었다. 내가 뭔가 '현장'에 와있구나,라는 실감도 났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뭔가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기분.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물론 재미라는 건 일반적인 의미의 재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게 생생히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감정은 요동을 쳤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이 났고, 공부도 못하는 상태에서 뙤약볕에서 구호를 외치는 모습에서는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비리 사학으로서 해온 행태를 들으면서 고등학생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냥 요리보고 저리 봐도, 참 이상한 형국이었다. 당시의 상문고는. 그래서 그때 마음먹었다. 이걸, 다큐로 찍어보자.
이걸 인터넷에 올린 사람은 도대체 테잎을 어디에서 얻었는진 모르겠지만, 거의 15년만에 다시 봤다. 당시에 촬영과 편집, 나레이션 작성을 내가 맡았다. 수진언니도 있었지만, 솔직히 마지막에는 언니도 바빠서 거의 떠맡다시피해서 작업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상영할 생각까진 없었는데, 막상 만들어놓고는 상문고 학생들만 보는 건 아까워 우리학교 고1 가을 축제에서 상영도 했다. 수련회 장면 하이라이트 정도가 나올거라고 기대했던 강당에서 나온 다큐에 선생님들은 술렁거렸다. 곧장 교장실에 끌려가서 교장한테 혼나고, 교감한테 혼나고, 영화반 선생한테 3번 연속으로 혼나던 기억이 난다. 싸대기를 때릴 줄만 알았는데, 눈을 꼭 감고 있었더니 부들거리며 노려보기만 하던 선생님의 얼굴도 기억난다. 강당이 꽉 찰 정도로 아이들이 많이 들어찼는데, 나는 혼자 계단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속상해서 울던 기억도.
지금 다시 보면, 오글거리다 못해 어이가 없는 편집과 나레이션이지만. 당시에는 참 진지하게 찍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랬을까 싶은, 불과 15년 전. 아니 무려 15년 전인가. 아무튼. 잊고 있던 감정의한 조각을 슬며시 들어올리는 지루하고 애틋한 20여분의 영상들.
살면서 처음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상문고 사태-잃어버린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