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행복을 묻는다면,
누군가 내게 '행복'에 대한 정의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아침에 일어나 된장찌개와 김장김치로 아침밥을 해먹고, 밤새 켜둔 보일러가 따땃하게 익혀놓은 서재방의 바닥에 누워 폭신한 이불 하나 덮고, <죄와 벌>을 읽다가, 한 두시간 뒤에 집중력이 떨어칠라치면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를 읽다가, 다시 지겨워지면 <이재익의 크리에이티브>를 들고 서성인다. 그마저 지겨워지면 차 한잔 마시고, 얼린 홍시 하나 긁어먹고, 꾸벅거리면서 졸다가 동네 산책 한바퀴 다녀오는 것. 얼굴을 차갑고 몸이 따뜻해진채로 집에 들어오면 결혼선물로 받은 티볼리 스피커의 볼륨을 높이고, 창틀의 바질잎을 부스럭거리면서 그 냄새를 맡는 것. 가만히 눈 감고 골방안에 갇혀있는 순간. 그날 읽은 책의 접어놓은 페이지들을 들춰가며 필사하는 시간.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평안한 순간. 그게 내게 행복.
하지만 이러한 행복도 결국은 상대적인 것. 예컨대, 매일 매일 이렇게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주말에 쉬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을 테고. 책을 누군가가 억지로 읽으라 했다면, 거기에 독후감이나 리포트까지 써야했다면 바짝 긴장이 되어 독서가 더이상 즐겁지 않았을 것. 더구나 생방송이나 원고처럼 마감기한까지 정해져 있었다면, 마음이 급해져서 지금처럼 책을 코 위에 덮고 음미해보는 시간이 없었을 것. 매일 회사 1층에서 파는 종이컵 속의 텁텁한 커피만 마시기에 집에서 30분동안 천천히 우려내는 차 한잔의 소중함을 아는 것,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들이 많기에 그걸 잠시나마 환기시켜주는 화분 하나의 가치를 아는 것. 결국 행복은 고통의 파편들이 산재되어있는 언덕위에 피어있는 한 포기 의 풀잎 같은 것. 고통과 긴장이 있기에, 행복과 이완이 존재하는 것. 밤과 낮처럼, 행복의 가치는 고통의 강도와 양이 커질 수록 희소해지기에 의미가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