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
지인의 블로그에서 '나이듦'에 대한 글을 하나 읽었다. 나랑 동갑내기에, 학교는 한해 먼저 들어갔던 친구다. 그 친구랑 난 같은 과반에 있었고, 같이 학생회활동을 하고, 세미나도 했었다. 비슷한 생활 반경안에서 비슷비슷하게 놀았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일년에 두어번 만나서 술이나 한잔씩 마시는 정도고 각자 다른 직장에서 살아간다. 그래도 그 친구를 만나면 기억이 난다. 리가 처음 만났던 날들이었던 20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나이.
친구의 글을 읽고 상당히 먹먹해졌는데, 이 대목이 그랬다.
_ 내겐 벌써 그런 과거가 생겨버렸다. 대학 캠퍼스 생활도서관에서 언 손을 엉덩이 밑에 넣어가며 세미나를 했던 때, 대학 축제날 여자친구와 밴치에 앉아 첫 키스를 하던 때, 타이거플라자 건물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집회를 열던 때. 한기와 열기 사이를 오갔던 시절. 두려운 것은 이 모든 기억들이 조금씩 지워져간다는 사실이다. _
한기와 열기 사이를 오가던 시절을 지난 나도 요즘 '나이듦'을 종종 실감한다. '몸'이라는 것을 느끼는 나이가 되면 '몸이 죽어가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몸을 의식한다는 것은 몸이 망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몸을 의식하지 않고 정신의 고른 상태에만 신경쓰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땐 미처 몰랐다. 몸이 주는 불편이 없었기에. 덩달아 타인의 고통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신체의 삐걱거림이 시작될 나이. 지하철에 앉아있는 예순살 먹은 노인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십분지 일이나마 피부로 느껴지는 나이.
세수를 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았던 얼굴은 이젠 잔뜩 건조해져서 곧바로 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바싹 발라버리기 일수다. 좋은 로션을 바르고 아이크림까지 바른 채 거울을 들여다봐도 얼굴의 어딘가는 축 늘어진듯한 느낌이다. 피부가 뼈에 탄력있게 붙어있지 못한 채 중력의 기운으로 떨어진다. 등산을 가면 무릎이 주기적으로 아프고, 허리도 밤만 되면 뻐근해진다. 비타민을 먹지 않으면 하루 종일 기운이 없고, 마음도 종종 축축 늘어진다.
무엇보다 전에 없던 증상은 몸이 '편한 것', '쉬운 것'들을 찾게 된다. 힘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추위를 뚫고, 고된 산행을 하고, 힘겨운 촬영을 하고 견뎌내던 것들을 이제는 몸이 스스로 꺼리게 된다. 이제는 심호흡 한번 하고 '에라이 그래도 아직 젊은데'하면서 나가야 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몸의 게으름이, 얼굴의 생기없음이. 더 가중되는 것이 두려워지는 것. 그게 '나이듦'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청년다움'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데 있어서는 '몸의 나이듦'을 이겨낸 강인한 정신이 있었다. 쉽고 간편하고, 몸을 보하는 것을 피해서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었던 마음의 근육이 있었다.
나또한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밤이다.
내일은 중요한 날이다. 아직은 청춘의 느낌으로, 무작정 부딪히는 정신으로 잘 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