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되었다.
심지어 서른살이 어느새 끝자락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두어달이 지나면 어엿한 삼십대가 될 것이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 몇달 전에 나는 20대였지' 하지 않아도 되는.
많은 사람들이 입모아 말하지만, 30대는 '내가 나 같지 않게 느껴지는' 나이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내 한몸만 책임지는게 아니라 타인까지 등에 업는 사람으로, 때로는 내 안에 생명을 품고 이를 길러내는 사람으로, 핑계를 대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나이다. 하지만 요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막연하게 이 모든게 늦춰지길 기대할 뿐. 미뤄낼 뿐. 그러다가 컨베이어 벨트처럼 어느 순간 내 앞에 다가오니까 해내는 일일 뿐. 때로는 '30대의 숙제'들이 버겁게 몰려온다.
2013년은 행복한 해이고 동시에 불행한 해였다. 상반기엔 하고 싶었던 작품을 할 수 있었고, 스스로 많이 배웠던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하다고 종종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모든건 착각이었다. 내가 스스로의 힘에 의해 쟁취해냈다고 생각했던 건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조력 덕분에 가능했던 거였다.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노를 젓는 이들 옆에 서서 '힘내라'고 응원만 한 것 뿐이었다. 그걸 하반기에 우연하게 깨달았다. 특히 정말로 친했던 친구와의 다툼은 내 자신의 취약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내가 스스로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그리고 삶이라는 건 해결할 수 없는 숙제들을 연속적으로 준다는 사실을.
친했던 친구와 2달간 '묵언수행'에 가까운 절교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 일만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대답을 들을 수 없어서 더욱 분노가 차올랐다. 도대체 왜. 왜. 화났던걸까. 밤에 자기 전에 동거인을 붙들고 울었던 적도 여러번이다. 어른이 되어도 관계가 변하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 시간을 겪어내면서 '관계'에 잔뜩이나 자신감이 생겼던 나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말을 거는 직업인으로서의 나. 내가 보는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때로는 '도구'이기도 하고' 수단'이기도 하다. 이들은 나의 훌륭한 조력자지만 나는 마치 공장장이 기계공들을 어떻게 굴릴까 생각하듯 '뽑아먹을'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많다. 그들에게 친절한 것은 실은 '더 잘 뽑아먹기'위함이리라.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친구의 입을 통해 듣고나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렇다면 모든 '관계'라는 건 그렇게 목적을 두고 있는건가. 서른 살의 어른에게 있어서 관계라는 건 '필요충분조건'이 확립되지 않는 이상 그렇게 깨지기 쉬운 것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해서.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까지 진실한 사람들은 많지 않은가보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