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글을 써놓고 나니, 내가 만나고 있는 친구한테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순간은 아니고, 한 24번째로 사랑에 빠진 순간이 기억난다. 내가 직장 1년 차때 한참 힘들어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 내가 왜 이 힘든 시험을 보고 들어와서 매일 테잎이나 날라야 하지' 하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굉장히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온몸이 파김치 무말랭이가 된 상태였다. 자취방으로 터덜터덜 걸어들어왔는데, 방에서는 학생때의 그 아이가 언제나 그랬듯이 우렁각시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건 기억이 안나고, (그냥 사는 게 서럽다는 생각에) 울먹거리는 나를 품안에 말없이 안아줬다. 그리고 예의 그 목관 악기 같은 목소리로 '나는 내가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라고 얘기 해줬다. "왜?"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으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서" 라고 대답해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가슴 속에서 화악-하고 뭔가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그 느낌이 비교적 생생히 기억날 정도다.) 삶의 의욕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랄까. 나보고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라니. 더구나 '행복'이라는 말을 꺼내는게 무색한 이 시대에 '참 행복하다니' 그 아이의 철없는 긍정성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었다. 요즘도 종종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데, 한국 사람 중 몇명이나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을까 싶다. 어쩌면 내가 유일무이하게 존경하는 구석인지도 모른다.하지만 분명한 건 그 긍정의 힘 때문인지,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굉장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막상 글을 써놓고 나니, 내가 만나고 있는 친구한테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순간은 아니고, 한 24번째로 사랑에 빠진 순간이 기억난다. 내가 직장 1년 차때 한참 힘들어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 내가 왜 이 힘든 시험을 보고 들어와서 매일 테잎이나 날라야 하지' 하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굉장히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온몸이 파김치 무말랭이가 된 상태였다. 자취방으로 터덜터덜 걸어들어왔는데, 방에서는 학생때의 그 아이가 언제나 그랬듯이 우렁각시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건 기억이 안나고, (그냥 사는 게 서럽다는 생각에) 울먹거리는 나를 품안에 말없이 안아줬다. 그리고 예의 그 목관 악기 같은 목소리로 '나는 내가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라고 얘기 해줬다. "왜?"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으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서" 라고 대답해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가슴 속에서 화악-하고 뭔가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그 느낌이 비교적 생생히 기억날 정도다.) 삶의 의욕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랄까. 나보고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라니. 더구나 '행복'이라는 말을 꺼내는게 무색한 이 시대에 '참 행복하다니' 그 아이의 철없는 긍정성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었다. 요즘도 종종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데, 한국 사람 중 몇명이나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을까 싶다. 어쩌면 내가 유일무이하게 존경하는 구석인지도 모른다.하지만 분명한 건 그 긍정의 힘 때문인지,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굉장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한 이상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이상하게 나는 이 순간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살짝, 변태적일 정도로. 영화나 소설을 봐도 나는 두 남녀의 사랑의 결실, 갈등, 이런거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공주와 왕자가 만나서 서로 사랑을 했는데 결혼하지 못한다는 건 중요치 않다. 내겐 서로에게 반하는, 그러니까 수채화처럼 무언가 팟-하고 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한때는 4월 이야기나 이와이 슌지 류의 스토리들에 엄청나게 집착했었다. 가끔 속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서 '사랑에 빠지는 찰나,'가 완성되버리면 그 이후로는 이상하게 이야기의 진도가 안 나간다. 그런데 정작 나는 지금 만나는 친구와 언제 처음 사랑에 빠졌는지를 잘 기억하질 못한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탓이 크겠다. 페이지 넘기듯이 겹겹이 쌓이올린 감정들 중에서 끙차, 하고 첫페이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 그래도 굳이 잘 복기하고 싶지 않다. 이 얘기를 그 친구한테 했더니 너는 좀 이상한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
아무튼 내가 가장 로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대충 이런 얼개를 하고 있다. 이런 줄거리는 몇가지 변주를 가지고 있는데,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클리셰 같은 얼개 하나만 써보겠다.
일단 중요한 건 배경이다. 비가 한두방울씩 내려오는 그런날이어야 할 것 같다. 대개 우산을 살까,말까 하다가 그냥 안사게 되는 그런날. 인물들이 만나는 장소는 종로다. (난 종로키드니까. 또, 이런 사랑이 강남 테헤란로나 동두천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다면 좀 멋대가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종로 낙원상가 꼭대기 층에 위치한 옛날 아트 시네마 같은 곳이면 좋겠다. 그날따라 할일도 없고 해서 주인공은 영화를 보러 들어간다. 1층의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서로 겉도는 일군의 무리가 10여명 정도 바글바글 모여있다. 뭐 이리 사람이 많다,하면서 계단으로 올라가려는 찰나, 엘리베이터가 땡,소리를 내면서 내려온다. 무리는 다들 말없이 작은 공간 속으로 비어져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는 콩나물 시루처럼 꽉 차고 다들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군말없이 타고 올라간다.
일단 머리를 삐죽 세우고 뿔테 안경을 쓴 20대 초반의 남자 몇몇이 2층의 악기상가에서 내린다. 3층의 1,2,3캬바레에서는 반짝이 양복과 드레스를 엉성하게 차려 입은 중년 남녀가 한무리 내린다. 그리고 나면 엘리베이터 안에 두명이 남아있다. 그와 나. 인간다발 속에서 서로의 존재는 그때서야 의식할 수 있다. 모두가 빠져나가고 단 둘만 남았을 때. 하지만 이때가 사랑의 시작은 아니다. 이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할 만큼은 아니니까. 이게 매우 중요하다.
아무튼 각자 표를 사가지고, 이제 막 시작하려는 영화를 보러 들어간다. 평일의 예술영화관답게 관객수가 매우 적다. 정말 고요할 정도로. 그나마 상영되는 영화도 흑백영화라서 영화관 전체가 안개 속에 잠긴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막 시작한 영화는 일본영화인 것 같다. 판플렛 읽을 시간이 없어서 그냥 일단 앉아있는다. 그렇게 30분, 40분쯤 지났을까.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순간이 엄습한다. 영화를 보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바로 그 순간, 가슴 한켠이 답답한듯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괜히 다리가 저려오고, 머릿속에서는 집중이 안되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아주 가끔 찾아온다.) 사실 그 순간만 이겨내면 예술영화는 볼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참을 수가 없다. 영화가 주는 권태를. '굳이 내가 그걸 참아내면서까지 봐야할 이유는 없다 '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나와보니 낙원상가의 너른 옥상위에선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정수리에 톡톡 내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옥상을 가로 질러 간다. 20미터 가량 걸으면 종로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건물 끝에 다다른다. 그 건물의 끝에 우산을 쓴 사람 한명이 있다. 근처에 가서 보니 그, 남자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올라온 그 남자. 한손에는 커다란 검은 색 골프 우산을 쓰고, 나머지 한손으로는 담배를 피고 있다. 우리는 약 5미터 정도 바둑알 위의 흰알과 검은 알처럼 직선위에, 하지만 저어멀리 외따로 떨어져 있다. 그가 힐긋,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침묵을 방해했나. 하긴 아무도 나올거라곤 예상 못했을 것이다. 나도 그를 힐긋, 쳐다본다. 엘리베이터에서 어깨의 높이나 입은 옷은 가늠했지만, 얼굴은 제대로 쳐다본적이 없다. 보니, 그냥 보통 평범한 남자의 얼굴이다. 길에서 지나가면 쉽게 잊혀지는. 그래도 굳이 표현하자면 섬세한 축에 속하는. 동글동글 하다기보다는 선이 얇은 얼굴이었다. 웃을 때와 가만히 있을 때의 표정이 많아 달라질 것 같은. 잘 펴진 화선지 같은 무표정한 얼굴이 웃을 때만큼은 부스스 구겨질 것 같은 인상이다.
빗방울이 아까보다 한층 더 굵어진다. 신고 있는 검은색 신발위에 파문을 그리며 숨구멍 사이로 물방울들이 맺힌다.
" 영화, 완전 재미없죠?"
남자가 말을 붙여온다.
"네?"
"재미 없어서 나오신 거 아니에요?"
잠시간의 정적.
"..네" 하고 나도 모르게 희미한 꼬리를 달고 대답을 했다.
" 저도 너무 재미 없더라구요. 아, 이게 왜 걸작이지?"
그 순간, 빗방울들이 마음에 동심원을 그리며 내린다. 가늘게 노래하면서.
엷게 웃는 그의 표정을 보며, 나는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갑자기 비가 쏴아- 내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남자가 바둑알이 움직이듯이 5칸, 4칸, 3칸, 2칸..그리고 딱 여유있을 정도의 '보이지 않는' 옆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 후로 둘이 같이 가서 술을 진탕 마시고, 하룻밤 사이에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서 스윽 웃고 헤어졌는지, 영화에 대한 심도깊은 토론을 빙자한 한바탕의 잘난척 말잔치를 하고선 헤어졌는지 알길이 없다. 그냥 우연하게 '절로 마음속에 꽃이 피어나는 순간'에 도달하는 그 산책같은 가벼운, 과정이 너무 좋다. 그래서 나의 상상 속 이야기들은 언제나 그 지점에서 끝나곤 한다.
이 얘기를 남자친구한테 해줬더니, 역시나 '참으로 이상한 여잘세'라며 웃어넘긴다.
아무튼 내가 가장 로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대충 이런 얼개를 하고 있다. 이런 줄거리는 몇가지 변주를 가지고 있는데,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클리셰 같은 얼개 하나만 써보겠다.
일단 중요한 건 배경이다. 비가 한두방울씩 내려오는 그런날이어야 할 것 같다. 대개 우산을 살까,말까 하다가 그냥 안사게 되는 그런날. 인물들이 만나는 장소는 종로다. (난 종로키드니까. 또, 이런 사랑이 강남 테헤란로나 동두천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다면 좀 멋대가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종로 낙원상가 꼭대기 층에 위치한 옛날 아트 시네마 같은 곳이면 좋겠다. 그날따라 할일도 없고 해서 주인공은 영화를 보러 들어간다. 1층의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서로 겉도는 일군의 무리가 10여명 정도 바글바글 모여있다. 뭐 이리 사람이 많다,하면서 계단으로 올라가려는 찰나, 엘리베이터가 땡,소리를 내면서 내려온다. 무리는 다들 말없이 작은 공간 속으로 비어져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는 콩나물 시루처럼 꽉 차고 다들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군말없이 타고 올라간다.
일단 머리를 삐죽 세우고 뿔테 안경을 쓴 20대 초반의 남자 몇몇이 2층의 악기상가에서 내린다. 3층의 1,2,3캬바레에서는 반짝이 양복과 드레스를 엉성하게 차려 입은 중년 남녀가 한무리 내린다. 그리고 나면 엘리베이터 안에 두명이 남아있다. 그와 나. 인간다발 속에서 서로의 존재는 그때서야 의식할 수 있다. 모두가 빠져나가고 단 둘만 남았을 때. 하지만 이때가 사랑의 시작은 아니다. 이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할 만큼은 아니니까. 이게 매우 중요하다.
아무튼 각자 표를 사가지고, 이제 막 시작하려는 영화를 보러 들어간다. 평일의 예술영화관답게 관객수가 매우 적다. 정말 고요할 정도로. 그나마 상영되는 영화도 흑백영화라서 영화관 전체가 안개 속에 잠긴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막 시작한 영화는 일본영화인 것 같다. 판플렛 읽을 시간이 없어서 그냥 일단 앉아있는다. 그렇게 30분, 40분쯤 지났을까.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순간이 엄습한다. 영화를 보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바로 그 순간, 가슴 한켠이 답답한듯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괜히 다리가 저려오고, 머릿속에서는 집중이 안되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아주 가끔 찾아온다.) 사실 그 순간만 이겨내면 예술영화는 볼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참을 수가 없다. 영화가 주는 권태를. '굳이 내가 그걸 참아내면서까지 봐야할 이유는 없다 '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나와보니 낙원상가의 너른 옥상위에선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정수리에 톡톡 내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옥상을 가로 질러 간다. 20미터 가량 걸으면 종로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건물 끝에 다다른다. 그 건물의 끝에 우산을 쓴 사람 한명이 있다. 근처에 가서 보니 그, 남자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올라온 그 남자. 한손에는 커다란 검은 색 골프 우산을 쓰고, 나머지 한손으로는 담배를 피고 있다. 우리는 약 5미터 정도 바둑알 위의 흰알과 검은 알처럼 직선위에, 하지만 저어멀리 외따로 떨어져 있다. 그가 힐긋,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침묵을 방해했나. 하긴 아무도 나올거라곤 예상 못했을 것이다. 나도 그를 힐긋, 쳐다본다. 엘리베이터에서 어깨의 높이나 입은 옷은 가늠했지만, 얼굴은 제대로 쳐다본적이 없다. 보니, 그냥 보통 평범한 남자의 얼굴이다. 길에서 지나가면 쉽게 잊혀지는. 그래도 굳이 표현하자면 섬세한 축에 속하는. 동글동글 하다기보다는 선이 얇은 얼굴이었다. 웃을 때와 가만히 있을 때의 표정이 많아 달라질 것 같은. 잘 펴진 화선지 같은 무표정한 얼굴이 웃을 때만큼은 부스스 구겨질 것 같은 인상이다.
빗방울이 아까보다 한층 더 굵어진다. 신고 있는 검은색 신발위에 파문을 그리며 숨구멍 사이로 물방울들이 맺힌다.
" 영화, 완전 재미없죠?"
남자가 말을 붙여온다.
"네?"
"재미 없어서 나오신 거 아니에요?"
잠시간의 정적.
"..네" 하고 나도 모르게 희미한 꼬리를 달고 대답을 했다.
" 저도 너무 재미 없더라구요. 아, 이게 왜 걸작이지?"
그 순간, 빗방울들이 마음에 동심원을 그리며 내린다. 가늘게 노래하면서.
엷게 웃는 그의 표정을 보며, 나는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갑자기 비가 쏴아- 내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남자가 바둑알이 움직이듯이 5칸, 4칸, 3칸, 2칸..그리고 딱 여유있을 정도의 '보이지 않는' 옆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 후로 둘이 같이 가서 술을 진탕 마시고, 하룻밤 사이에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서 스윽 웃고 헤어졌는지, 영화에 대한 심도깊은 토론을 빙자한 한바탕의 잘난척 말잔치를 하고선 헤어졌는지 알길이 없다. 그냥 우연하게 '절로 마음속에 꽃이 피어나는 순간'에 도달하는 그 산책같은 가벼운, 과정이 너무 좋다. 그래서 나의 상상 속 이야기들은 언제나 그 지점에서 끝나곤 한다.
이 얘기를 남자친구한테 해줬더니, 역시나 '참으로 이상한 여잘세'라며 웃어넘긴다.
예전의 내 방과 지금 내방을 비교해보면 '천지차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개과천선, 문명화, 부활...뭐 이런 말들을 갖다 붙이는게 맞다. 여자로서 이런 말을 갖다 붙이는게 조금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니까.
나도 아주 어릴적(그러니까 영유아기와 초등학교)에는 그다지 지저분한 축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몸은 항상 깨끗하게 하는게 좋았다. 오죽하면 취미가 '귀파기'와 '손톱깎기'였을가. 뭔가 지저분한 것을 몸에서 골라내는 결벽증적인 행동들을 어릴적부터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동생 2명과 복닥거리면서 같이 공부방과 침실을 나눠썼던 탓이 컸다. 책임이 분산되면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으니까. 청소의 원리도 똑같이 적용된다. 내가 아니라도 2명이 나눠서 치우면 된다. 고로, 결국 아무도 치우지 않는다! 그런 방에서 살다보니 당연히도 모든게 엉망진창이었다. (그렇다고 개미가 들끓고 거미가 사는 건 아니었다. 왜냐면 우리 곁에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은 영위하게 해주는 '엄마'라는 고마운 존재가 있었으니까) 문제는 '정리'였다. 무언가를 버린다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학교 오는 길에 주는 전단지 하나, 길가에서 주워온 돌이나 나뭇잎 같은 것들이 책상 위에 항상 한더미씩 쌓여있었다 .그 시절엔 이상하게 그걸 버리는 게 싫었다. 이거는 이거대로 나름의 사연이 있고, 저거는 나중에 꼭 쓸 것 같고. 나중에 이런걸 모으면 어쩐지 의미가 있을 것 같은. 지금도 옛날 보물상자랍시고 모아놓은 걸 열어보면 죄다 돌과 나뭇잎, 지우개, 몽당연필들 투성이다. '버리면 언젠가..'하는 아줌마 근성 같은게 중학생인 내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걸 무식하게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어쩔 때는 마법처럼 이런 것들이 슬그머니 없어지기도 했다. 나는 늘상 엄마한테 '왜 버려!'하고 항의를 했지만, 엄마는 항상 '나도 몰라. 어느순간 사라졌더라'라고 시치미를 뗐다. 순진한 나는 그 말을 들으면 금세 잊어버리는 집착없는 성격이었지만, 그 물건이 눈에 보이는 순간만큼은 내 소유물로서 대단한 애착을 가졌다.
정리 외에 항상 문제가 되는 건 '옷'이었다. 학교에서 다녀온 후 교복은 늘 무심하게 '어딘가'에 걸쳐뒀다. 주로 의자, 침대, 책상 모서리, 스탠드의 꺾어지는 부분 같은 곳이었던 것 같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다시 잠바나 바지 등을 어딘가에 걸쳐뒀다. 그렇게 이,삼일이 지나고 나서 방에 들어와보면 여기저기에 빨래를 넌 것처럼 옷가지가 아방가르드하게 걸려 있었다. 한 자리에 두면 될 것을 여기저기 걸다보니 어두울 때 방에 들어가면 침대 곁에 동생에 누워있는 줄 알고 걸린 코트를 슬쩍 건드려 볼때도 있었다. 엄마는 이런 나를 이해를 못했다. 본래 깨끗한 성품이셔서 그렇다. 그래서 잔소리는 대개 '깨끗하게 치우거라 시원아'에서 시작했지만, 몇초 지나지 않아 '도대체 어떻게 시집을 가려고 그러니!" 혹은 "이럴 거면 당장 나가!"에서 살포시 끝나는 잔소리 증폭의 단계의 정점을 찍으셨다. 하지만 몇년간 왕왕 울리던 그 증폭기는 결국 터지고 말아 어느 순간 '포기'라고 간판을 내걸었다. (물론 철이 들어서인지 20살 이후로 옷정리는 매우 깔끔하게 하게 되었다. 하지만 책상 위의 그 나뭇잎들은....)
뭔가를 버려야겠다,라고 생각했던건 전적으로 25살에 취직후 집을 나온 뒤다. 우선 온전한 내방이 생겼다. 그것도 2개씩이나. 바람이 들이치고, 매우 낡은 집이었지만 처음으로 해보는 자취생활이었다. 그래서 '내공간'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컸던 시기다. 이것저것 내 취향대로, 내가 그동안 살고 싶던 방식대로 세간을 들여왔다. 그런데 문제는 '정리'였다. 그동안 나뭇잎, 작은 돌, 전단지, 포스트잇 따위에 집착하던 나의 생활은 금방 한계를 드러냈다. 나뭇잎들은 바스라져서 바닥에 굴러다니고, 돌들은 습기를 머금고 구석에서 음습하게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짐은 더 많아졌다. 회사에서 들고 오는 수많은 촬영 편구며, 6미리 테이프 껍데기, 볼펜 같은 것들이 집안에 어지럽게 깔려 있었다. 평소에 청소기를 잘 돌리지 않았던 나는 하루에도 한겹씩 쌓이는 먼지에 금세 기관지염이 도졌다.
그때부터 결심했다.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그리고 쌓여있던 것들을 차츰 버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머금고 나의 나뭇잎 돌 컬렉션을 치워버리고, 계절별로 옷가지도 정리했다. 속옷을 넣는 정리함도 사고, 잘 쓰지 않는 것들은 잘 정리해서 창고에 넣어두었다. 그랬더니 훨씬 살만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조금 어질러진 방'에 대한 로망이 있다. 결벽증적인 사고 안에서는 창의력이 생겨나기 힘들다.(고 늘 생각한다.) 엄밀함을 요구하는 머릿속에서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속된 욕망이 꽈리를 틀기 힘들다. (고 나는 주장한다.)실제로 청소에 매달리다보면 하루가 꼬박가버린다. 집중은 되지만, 머릿속도 똑같이 청소해내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에 동의해주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깔끔을 추구하는(실제로 엄마의 소망은 나머지 가족들 때문에 현실화되진 못하는 상황이지만) 엄마와 더 깔끔한 남자친구를 둔 탓에 항상 나의 개과천선은 '기특하지만, 여전히 조금 모자란'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내게 '더, 더, 더!'라며 경마장의 경주마에게 하듯 채찍질을 한다. 그래도 나는 내가 원하는 수준 안에서만 일단 움직이련다. 누군가를 위해서 정리하고, 청소를 하다보면 내가 너무 힘들다.

